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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2 [비밀/아오마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上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책 속 한 구절을 삼킨다. 바스라지듯이 옅은 머리카락을 밤의 물결 사이로 띄우면서 마키는 천천히 몸을 늘렸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희게 눈을 메우는 목을 한 바퀴 크게 돌린 후 돌아보지도 않고 아오키에게 손을 내민다.



 "아오키, 커피."

 "아-, 넵."



 이번에 들어온 뇌는 30대 초반 남성의 뇌로, 도쿄의 한 멘션에서 발견된 사체이다. 직접적 사인은 흉기에 의한 심장 파열 및 과다 출혈. 그 날 저녁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술 냄새를 풍기며 침대 위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되었다.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연인도 없는 조용한 독신 남성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살해당할 이유가 없다, 너무나 억울하다는 유족 측의 말에 따라 '제9'로 인계되었다. 더 이상 죽음으로서도 침묵할 수 없는 현실에 아까 떠올랐던 구절 위로 줄을 그으면서 마키는 재생 키를 눌렀다.



 "어라? 이게 무슨."

 "꿈인가 보군."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루브르 박물관 앞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유리의 피라미드가 이내 투명하게 빛을 받아 형상을 바꾸어낸다. 그토록 거대했던 유리 피라미드는 이내 붉은 색을 띤 유리 장미로 형태를 변화시켰다. 아무리 보아도 현실세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규모의 영상에 마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대략 오전 0시에서 1시 사이.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겨울의 온도를 고려해 오차 범위를 감안해도 오후 11시 이후이다. 특히나 그 날은 회사 전직원이 참여하는 회식이 있었다고 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보니 거의 그쯔음으로 확정이 난 상태였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 남자는 살해당하는 그 순간까지 잠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좀 더 앞 선 시간에 있었던 회식 자리를 살펴볼까요?"

 "아니, 조금 더 내버려둬."



 당황하는 아오키를 저지하고서 마키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마키의 투명한 각막 위로 떠오르는 영상을 흘끗 훔쳐보던 아오키도 이내 긴장하고 꿈이 펼쳐지는 스크린을 직시한다. 한없이 붉게 만개한 유리 장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보랏빛이 감겨든 장미가 되어 한 남자의 손으로 옮겨간다.



 "마, 마키 실장님."

 "아아. 본인인 듯 하지. 누구에게 줄 건지가 궁금해."



 한없이 진지한 눈으로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아오키는 황급히 살해당한 남자 주변 인물의 신상과 사진이 담긴 타블렛을 켠다. 이윽고 흐릿한 형태는 뚜렷해지며 남자를 향해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무라사키 하루라고 하는 여성입니다."

 "쉿. 잠깐 더 볼 게 있어."



 스크린에 여성의 영상이 비춰지자 아오키가 바로 그에 상응하는 여성의 이름을 입밖에 낸다. 그러나 마키는 아오키를 살짝 돌아보고는 다시 스크린에 눈을 고정한다. 남자는 머리를 한 번 긁적거리고는 타블렛에 띄운 사진보다 아름답게 비쳐진 하루에게 들고 있던 보라색 장미를 내민다. 그리고나서 옆을 보자 장신의 남자가 웃으면서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저 남자는 누구지?"

 "그게 저기, 아, 여기 있습니다. 츠키야마 카오루. 피해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합니다."

 "저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져오도록."



 그리고는 곧장 몸을 일으킨다. 비틀거리지 않는 마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오키는 나즈막히 숨을 내쉰다. 다행히 이번 남자의 뇌 영상은 그다지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물론 처음 유리 피라미드가 나타났을 때에는 깜짝 놀랐지만 평소 보는 영상에 비하면 놀랄 것도 없다. 아오키는 이미 식어버린 마키의 커피 잔을 들고서 방을 나섰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연인이란 거지?"

 "네. 약혼자라고 합니다. 남자 쪽인 츠키야마 카오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이 34살, 피해자 타나카 잇세이의 가장 오래 되었고 절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대학교에는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및 직업을 전전하다가 3년 전 잇세이가 소개시켜 준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타나카는 호세이 대학교 출신이라고 했나? 꽤 친구 사이의 갭이 크겠군."



 오카베가 끼어들자 아오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잇는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타나카 잇세이 자체가 성실한 인물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인이라 소문이 나있습니다. 특히 츠키야마의 약혼자 무라사키는 타나카가 소개해줘서 약혼까지 가게 된 케이스라고 합니다."

 "어이쿠. 직장에다가 약혼자까지. 츠키야마는 타나카가 은인이겠구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츠키야마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잇세이를 위하여'라는 말로 자주 건배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주변 친구들도 두 사람이 지닌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기는 하더군요."



 오카베의 비아냥에 아오키 또한 마뜩찮은 눈으로 보고서에 출력된 츠키야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얼굴과 쌍커풀이 없이 기름한 눈. 싱글 싱글 웃는 모습이었던 타나카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서로의 인상만 두고 보아도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우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도 전개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 밤새 술을 마실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표면적인 것 뿐이다. 맑게 꽃잎을 피워 올린 연꽃이 그 아래에서 얼마나 깊은 어둠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다. 영원한 침묵은 죽음이라 생각했지만, 과연 갈가리 찢긴 죽음과 침묵 사이에서 어떤 것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인지.



 아오키는 잠깐 길게 뻗어간 침묵의 머리타래를 세아리다가 무라사키의 순서로 넘어갔다.



 "이 여성은 무라사키 하루. 아까 말씀드렸던 츠키야마의 약혼녀로 31살입니다. 타나카와 마찬가지로 호세이 대학 출신으로, 대학교 시절 들었던 천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타나카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졸업 후 소원해졌었는데 동아리 졸업생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다시 타나카와 친해져 츠키야마와 관계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혼식은 작년 가을, 올 봄에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짙은 밤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입가에 난 점이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생긋 웃고 있는 얼굴은 일견 수수해 보이지만 부드럽고 단아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나란히 떠오른 세 사람의 사진을 보고 있던 우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영 모를 분위기군요. 누가 보아도 재녀인 무라사키와, 능력 있는 호인인 타나카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지금 우리는 어울리는 커플 만들기가 아니라 타나카 잇세이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네만. 이 두 사람의 브리핑은 이쯤하고. 우노와 이마이는 저 두 사람의 사건 당일 행적을, 오카베와 야마모토, 소가는 타나카 잇세이의 인간 관계 및 개인적 원한까지 모두 알아올 수 있도록 한다. 나와 아오키는 그 날 행적을 다시 재생하겠다."



 카리스마 있는 마키의 지시에 모두가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마키 또한 아름다운 입술을 다물고 영상이 보관되어 있는 영사실로 걸어간다.



 "저렇게나 차이가 나면 친구로 남아있기가 불편하겠어요."

 "그럴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절취

...ㅠㅠㅠ젠장

시미즈 레이코님의 만화는 엔딩이 항상 먹먹해서 그랬는데

그 미모 보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ㅠㅠㅠㅠㅠ

우리 실땽님 ㅠㅠㅠ 그나마 하삐엔딩인 아오마키라 다행입니다.

현 시점은 타키자와가 들어오기 전입니다~

Posted by habaner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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