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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17 [하이큐/다이스가카게] 고백 中
  2. 2016.05.11 [하이큐/다이스가카게] 고백 上

 숨을 가늘게 내쉬자 입술 앞에 얕게 소용돌이가 쳤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이치가 쿡쿡 웃음 짓더니 목덜미를 끌어 어깨를 살짝 감싸안았다. 스가와라가 깜짝 놀라 다이치를 올려다보았지만 모르는 척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실었다. 흘끗 내려다보자 눈을 연상시키는 하얀 얼굴에 꽃잎 같은 뺨이 붉어져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 맞추고픈 욕망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다이치는 낮게 신음성을 흘렸다.

 

 

 "? 다이치?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너를 덮치고 싶어서 그래, 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다이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낮에도 고양이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인적이 드문 지역인데다가, 연습을 마치고 늦은 시간인 탓에 하교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남색 머리카락을 드리운 밤은 우아하게 굽어보듯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으, 역시 토스를 제대로 올리는 건 너무 어려워. 아사히나 다이치에게라면 모를까, 히나타에게는 카게야마만큼 해줄 수가 없어. 분하네."

 "어울리지 않게 청승이다, 코우시. 우리는 너를 신뢰하고 있다구?"

 "신뢰와 실력은 별개의 문제잖아. 하아. 역시 천재라는 건가."

 

 

 언제나 쾌활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스가와라로서 보기 드물게 힘이 빠진 상태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코트를 누비는 '제왕'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눈 앞에서 보게 된 실력은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자신이 속한 팀이 강해진 것은 물론 기뻤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자신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게 된 스가와라는 최근 슬럼프에 빠진 상태였다.

 

 

 다이치도 그런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라서 일부러 평소보다 명랑하게 그를 대하고, 그가 올려주는 토스는 최대한 강하게 스파이크를 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스가와라가 오히려 더 화를 내는 바람에 다이치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스가와라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한참이나 중얼거리던 스가와라는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을 깨닫고 문득 고개를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으아. 또 이상한 소리만 잔뜩 했구나. 미안. 그치만 괜찮아, 다이치. 이건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니까, 카게야마에게 화내거나 하지는 않아. 음, 타나카를 좀 괴롭힐지는 몰라도."

 

 

 씨익 웃는다. 밤조차 얼리는 환한 미소에 다이치도 안심한 듯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 붉은 뺨에, 붉은 뺨보다 더 붉은 입술 가까이 볼에 입술을 댄다. 상쾌한 밤바람을 잠재우는 입맞춤에 스가와라는 화들짝 놀라 서너 걸음이나 멀리 떨어진다.

 

 

 "으아, 으아아, 으아아아아 무슨 짓이야, 너!"

 "야, 그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면 나 상처 받는다구..."

 "아니, 아니 그, 싫다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자기, 헉, 거기다 여기 우리집 앞이라고?"

 "뭐 어때, 보려면 보라고 해. 어차피 넌 내 '연인'이잖아."

 "그, 그런 낯 뜨거운 소릴!"

 

 

 뺨만 붉어지다 못해 얼굴 전체가 토마토처럼 붉어진 스가와라는 참지 못하고 다이치의 옆구리에 펀치를 날린다. 꽤 아플 법도 하지만 다이치는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스가와라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욥, 카게야마."

 "넷, 스가 선배!"

 

 

 스가와라보다 2살이나 어린 이 천재 후배 녀석은 융통성도 없고 또래와는 사회성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선배에게는 깍듯한 면이 있다. 이런 걸 갭 모에라고 하던가, 라고 중얼거리던 스가와라는 가벼운 말투로 입술을 여닫았다.

 

 

 "음, 아무래도 히나타에게 토스 넣는 게 좀 어려워서 말이야. 어떤 요령으로 넣어주어야 할 지 좀 알려줄래?"

 "아, 넷!"

 

 

 연습을 시작한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라, 후배가 선배를 가르쳐주는 묘한 광경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제지하거나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그런 면이 바로 스가와라가 다른 부원들에게 신뢰를 얻게 된 바탕일지도 몰랐다. 연습 시합을 제외하고 몇 시간이나 카게야마에게 배우던 스가와라는 녹초가 된 모습으로 숨을 몰아 쉬었다.

 

 

 "우와, 체력 괴물. 너랑 히나타는 매일 이 상태란 말이지?"

 "열심히 단련하고 있슴다."

 

 

 무뚝뚝한 대답 뒤에 수건이 내밀어진다. 언제 챙겨왔는지 스가와라에게 수건과 비타민 워터를 건넨다. 감사히 받고 숨을 가다듬으려니 조용한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고막에 닿아왔다.

 

 

 "선배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는 않슴다."

 

 

 땀을 닦다 말고 멍하니 쳐다 보자 그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유독 귀만 빨개져 있었다. 스가와라가 그것을 지적하려는 찰나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카게야마는 재빨리 체육관 여기저기 흩어진 공을 모으러 달려간다.

 

 

 "-그랬단 말이지. 꽤 귀여운 면도 있지 않아?"

 "나쁜 녀석으로는 안 보였으니까. 우리 사랑받는 선배들이구나?"

 "엇, 그렇게 들으니까 기쁜데. 사랑받다니, 앞으로 듬뿍 귀여워해줘야지."

 "우와, 코우시. 완전 성희롱하는 아저씨 같았어."

 "뭐 어때, 사랑스러운 후배 아니냐? 아, 그리고 또 말이야-."

 

 

 시답잖은 농을 지껄이면서 귀가한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와 연습을 시작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는지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어쩐지 불편해지는 감정을 지각하지 못한 다이치가 억지 웃음을 짓는다. 말수가 줄어든 다이치가 이상했는지 스가와라는 말하다 말고 멈춰 다이치의 표정을 살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그 하얀 코와 왼 눈 가의 검은 점, 엷은 색소가 시계로 들어차자 세상이 멈춰 버린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술을 탐했다. 어쩐지 메마른 붉은 입술 위에 입술을 덮고, 다물린 입술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 벌어진 입술을 가르고, 부끄러워하는 혀를 얽는다. 가지런한 이를 훑고, 입천장을 간지럽히고도 모자라 몇 번이고 혀를 감아 올렸다. 물기 젖은 소리가 괴로운지 스가와라의 미간이 좁아졌지만 놓아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강하게 끌어 안으면서 눈가의 점 위로 눈물이 고여 흐를 때까지 수없이 달콤한 입술을 먹어치웠다.

 

 

 "으, 읏. 그만-. 다이치."

 "이제, 카게야마 얘기는 그만해."

 

 

 으르렁대듯 낮게 속삭이는 다이치의 말에 색소가 옅은 스가와라의 눈이 커진다.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시, 다짐하듯이 다이치가 입을 열었다.

 

 

 "내 앞에서 카게야마 이야기는 더 하지 마."

 

 

==

으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 다이치 왜케 박력 넘치게 썼징...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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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치 괜찮지 않니?"

 "아, 배구부 주장? 글쎄. 너무 꽉 막힌 거 같지 않아?"

 

 

 모르면 입이나 다물어, 젠장.

 

 

 그러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욕설을 애써 누르며 스가와라는 성큼 성큼 여자 아이들을 앞질렀다. 어릴 적부터 절친한 사이로 지내왔던 다이치였건만, 그를 볼 때마다 미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 것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였다. 물론 곁에 있으면 항상 편안하고 숨길 것 없는 좋은 친구임은 다름 없지만 최근 들어 멍하니 다이치를 생각하게 된다거나, 갑자기 다이치를 보면 가슴이 뛴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던 스가와라는 결국 이 감정이 다이치를 향한 애정임을 인정해야 했다.

 

 

 "스가. 요새 왜 이리 빨리 가?"

 "아, 넌 뒷정리하고 오니까 늦잖아."

 "그런 것 치곤 날 피하는 느낌인데?"

 "짜샤. 내가 왜 널 피하냐? 뭐 잘 못 먹었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웃으며 받아쳤지만 새삼 다이치의 빠른 눈치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스가와라를 빤히 바라보던 다이치는 씨익 웃더니 등을 툭 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마는 말할 생각 나면 언제든지 말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고는 준비실로 들어가버린다. 그 한 마디에 이토록 붉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며, 스가와라는 그 자리에 주르르 앉아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하얀 얼굴에 살짝 열기 오른 복숭앗빛 뺨이 스스로도 부끄러워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으려니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스가 선배?"

 "앗."

 

 

 최근 세터로 들어온 1학년 후배가 주저 앉은 스가와라가 신기하다는 듯 내려다 보고 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눈 꼬리가 올라가 빈 말로라도 첫인상이 좋다고는 볼 수는 없었지만 함께 있다보니 보기보다 예의 바르고 성실한 녀석인 것을 알게 되었다. 스가와라는 붉어진 뺨을 애써 숨기며 성실한 후배에게 씨익 웃어 주었다.

 

 

 "괜찮으심까?"

 "어, 아냐아냐. 잠깐 현기증이 나서. 하하하, 얼른 집에 가야지?"

 "...예. 조심히 가십쇼."

 

 

 그리고는 물끄러미 멀어지는 스가와라의 등을 쳐다본다. 의외로 여린 등이 검푸른 밤 너머로 서서히 녹아든다.

 

 

 "코우시?"

 "-하, 응?"

 "약이라도 먹었냐, 요새 왜 이리 맥을 못 추냐?"

 

 

 정신 없이 잠들어 있던 스가와라는 다이치가 부르자 번쩍 눈을 떴다. 그런 스가와라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다이치는 들고 있던 우유를 책상 위에 둔다. 본인 때문에 고민하느라 제대로 못 잔다는 사정을 말할 수 없는 스가와라는 힘없이 웃으면서 우유를 땄다. 시원하고 고소한 우유를 두어 모금 마시니 멍했던 정신이 그나마 명료해졌다.

 

 

 "약 좋아하네. 봄이라 그래. 춘곤증인가 보다. 냅둬. 한 숨 더 자려니까."

 

 

 길게 몸을 뻗어 기지개를 키면서 하품을 했다. 졸린 척 엎드려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다이치 덕에 빨개진 뺨을 애써 감춘다. 그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이치는 아예 앞자리에 앉아 스가와라의 앞에 턱을 괸다. 모르는 척 잠들려던 스가와라는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이치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뭐야, 이 자식아!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거기 멍하니 앉아 있지 말고."

 "으와, 깜짝이야.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래?"

 "너 때문에 거슬려서 잠을 못 자니까 그렇지."

 

 

 궁시렁거리면서 뒷통수를 긁적거리는 스가와라를 빤히 보다가 다이치가 불쑥 말을 걸었다.

 

 

 "스가와라. 부실 가기 전에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잉?"

 

 

 무어라고 말할 틈도 없이 일어나 자리로 간다. 스가와라는 그런 다이치를 보다가 이마를 찡그리곤 다시 책상 위에 몸을 뻗었다. 걸어가는 그 등을 보자 둔한 녀석, 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만 또한 좋아하는 사람을 보자 비어져 나오는 웃음도 어쩔 수 없었다. 피식거리면서 선생님이 올 때까지 조금 더, 잠을 자기로 했다.

 

 

 "무슨 일이야?"

 "너, 요새 많이 피곤해보이잖아. 기다리려고 했는데-."

 "별 거 아니라니까. 춘곤증이라 그래."

 

 

 툭 말을 끊어버리고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결코 본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임에도 저리도 걱정하는 다이치에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심장을 누르면서 스가와라는 체육관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남겨진 다이치는 몇 번이나 스가와라를 향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머리를 긁고 운동화로 땅을 끄적였다.



 그리고는 스가와라의 뒷모습을 와락 끌어안았다.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스가와라를 알 리 없는 다이치는 스가와라의 귓가에 조심스레 숨을 불어넣는다.

 

 

 "좋아해, 코우시."

 "엉?"

 "좋아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참을 수가 없을 만큼. 좋아해, 좋아해. 스가와라 코우시."

 

 

 갑작스러운 고백에 입만 뻐끔거린다. 그러나 전해지는 다이치의 고백은 아플 만큼 진심이라서, 스가와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색이 엷은 홍채에 뜨거운 이슬이 괴이다가 뺨을 타고 굴러 떨어진다. 스가와라의 목을 감은 다이치는 대답 없는 스가와라에게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본다.

 

 

 "미안, 코우시. 당황스럽겠지만 참을 수 없었어. 뭐 지금 바로 대답해달라거나, 너한테 부담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 나는 그냥, 그냥 -이런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어."

 "-고마워."

 "뭐라고?"

 "고마워, 다이치."

 

 

 돌아보는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보석보다 아름답게 열린 눈물에 다이치는 숨을 들이키고는 스가와라를 꼭 끌어 안았다. 목덜미와 귓가로 무너지는 뜨거운 물기가 가늘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스가와라는 다이치의 품에 안긴 채 오래오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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