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3. 01:02

[기현얀달]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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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8. 12:49

[천호지후] 얼음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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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30. 19:58

[한달] 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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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01:32

[한달]손에 담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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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2. 14:59 자캐

[자캐] 달 없는 밤

 하얗게 일그러진 세계 속에서 숨죽여 외쳤다. 죽고 싶다, 고. 명확한 의지를 가진 네 글자는 입밖에 설니 하얀 입김에 섞여 소리 소문 없이, 그러나 돌이킬 수도 없이 깊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눈 내리는 밤, 나타샤도 하얀 당나귀도 없는 그 밤에 담배 연기가 구름 얽듯 세계를 옭아매었다. 하얀달은 한없이 달겨들어도 차마 쓰지 못하는 시의 구절들을 삼켜내며 눈을 감았다.





 하얀달.



 하, 얀달.



 입술 새 제 이름이 눌리면 소년은 창백한 하얀 얼굴을 숙이며 다만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른 어깨는 한 손에 잡힐 듯 가늘었고, 허름한 핏기조차 가신 입술을 얼마나 잘근 잘근 씹어댔는지 아랫 입술은 너덜거렸다. 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던 사내애들은 저들끼리 모여 낄낄거리다 익숙하게 나뭇가지를 꺾어냈다. 두텁게 꺾인 나뭇가지는 그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하얀달의 머리카락을 꾸욱 눌렀고, 제법 날카로운 끄트머리가 하얀 관자놀이에 사정 없이 생채기를 냈다. 금시로 새빨갛게 상처를 메운 피는 가늘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으. 씨발, 쟤 봐. 피난다."

 "야, 그거 버려. 존나, 너도 병 옮는다?"

 "저 새끼 에이즈라 그랬어. 후장 따였다던데?"

 "와. 진짜냐? 개쩔게 더러운 새끼네. 야. 후장 따인 기분 어떠냐?"



 원색적일만치 지저분한 비난에도 헐렁한 교복을 입은 하얀달은 익숙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손등에 떨어지는 핏방울을 쳐다보았다. 뼈마디가 울릴 정도로 마른 손등을 얽은 핏방울은 기이한 문양을 그리며 손톱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이제는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그들의 욕설을 듣던 하얀달이 문득, 어깨를 떨었다. 새하얀 운동화 코가 툭툭 바닥을 차며 다가왔다. 하얀달은 서둘러 피를 바짓자락에 닦아냈다. 그 순간이 지나기가 무섭게 부드러운 손아귀가 새까만 하얀달의 머리카락을 억세게 잡아올렸다. 아픔에 찡그려진 눈썹이 햇살 아래 드러나자 화끈한 통증이 뺨에 새겨졌다.



 "더러운 새끼가 어딜 눈을 마주쳐?"



 단정한 얼굴을 가진 소년은 하얀달과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뺨을 내리쳤다. 소년은 여름철 상한 음식이라도 본 듯 비위가 상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장난치듯 하얀달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러나 그 손길만큼은 조금도 부드럽지 않아 뚜둑 뚜둑, 짧은 머리카락이 끊기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얼얼한 뺨을 감싸쥐지도 못한 하얀달은 소년의 몸짓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면서 말을 없앴다.



 "야, 씨발. 하얀달, 아, 존나, 이름도 좆같이 이상한 새끼. 너 내가 뭐랬냐."



 한참을 마음대로 하얀달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소년은 밀치듯 머리카락을 놓아버렸고, 그 서슬에 비틀거리면서 허우적거리던 하얀달은 눈을 감았다. 밀려드는 새카만 어둠은 고독이었고, 그 외로움은 오히려 저를 안심하게 했다. 제발, 이 순간이 끝나길, 저들이 지나간 뒤의 혼자를 뼈저리게 탐하며 하얀달은 입술을 몇 번이고 짓씹었다. 갈라진 입술 끝에서 피가 비어져나와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하얀달의 모습이 오기를 불러 일으켰는지 소년은 신발 끝으로 가는 무릎을 툭툭 치다가 종내에는 발길질로 종아리를 까내렸다. 맥없이 무너지는 하얀달을 내려다보던 소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귓가에 속닥거리듯 입술을 열었다.



 "야, 하얀달, 개새끼야. 후장에 박히는 기분, 어땠냐? 존나 앙앙거렸겠네, 씨발 새끼."



 하얀달은 주먹을 쥐었다. 비어져나오는 제 입술 너머의 붉은 피를 떠올리면서 그 머릿속에는 온통 시가 쓰였다. 하얗게 천공을 감싸 안는 달, 청금색 잉크로 지워지는 우주. 봄이 되면 비단처럼 벌어지는 다홍색 모란 꽃잎, 들. 사랑한다 속삭이는 연인들의 날갯짓. ...그러니까,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서 이 순간을 견디도록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순간을 헤아리면서.



 뺨에는 피가 아닌 미적지근한 것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피에 섞인 침이 하얀달의 볼을 타고 내리자 혐오가 뒤섞인 탄성이 소년들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제각각 다시금 의식처럼 그에게 한 마디씩 건넸고, 욕설이 한 마디씩 들려올 때마다 하얀달의 심장은 십 년을 삼켜갔다. 어린 몸을 지탱하는 늙은 심장은 아마도 오래 견디지 못할 텐데, 그렇다면 나의 나이 든 심장은 조금쯤은 더 빠르게 그 죽음을 당겨와도 좋을 텐데, 나직한 한숨을 쉬며 하얀달은 고요히 눈을 내리떴다. 마지막으로 제 곁에 서 있던 소년이 운동화 신은 발로 무릎 꿇은 하얀달의 허벅지를 내리누르고 자리를 뜨자 그제야 하얀달은 무감한 눈으로 천공을 올려다보았다.



 달뜬 감청색으로 번진 하늘에는 아직 달을 맞이하지 못하여 지상에 뜬 하얀달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온전히 저 뿐이라는 적막감이 아릿하게 몸을 감싸고, 덩굴처럼 저를 감아드는 고적함은 하얀달은 운명처럼, 신탁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치 제가 하늘을 받치는 아틀란티스가 된 것마냥 차가운 거리를 무겁도록 천천히 걸어가며 하얀달은 어깨를 움츠렸다. 제 시선 아래 구두를 신은 발, 운동화를 신은 발이 지나갈 때마다 하얀달은 몸서리치며 공포를 삼키고, 저를 삼키고-, 살아있음을 삼키고.



 삼켜낸 아픔과 공포와 삶은 시가 되었다. 시를 씀으로써 하얀달은 그나마 살 수 있었다. 모든 죽어감을 꿈꾸면서도, 삶을 써내려간 하얀달은 더듬거리며 말하는 대신 시를 썼고, 그리로부터 10년 뒤, 그는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처음으로 더듬지 않고 펜을 꺾어버리겠노라 말했다.



 저를 살게 했던 그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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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6. 23:03 자캐

[요한은하]첫 눈

 감긴 눈 안에는 어느 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온전히 혼자라는 어둠과 고독은 저를 묻어버리기라도 할 것마냥 기도를 타고 들어와 혈관처럼 온 몸을 눅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온기 한 줌 없는 그 곳에서는 듣지 못했던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고막을 찢어버릴 듯 감겨왔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오전 6시 34분. 여름이라면 희끄무레한 새벽빛이라도 비쳐들어올 시간이었지만 겨울에 가까워진 탓인지 커튼 너머 창문에는 서리서리 어둠이 달라붙어 있었다. 은하는 무거운 눈꺼풀을 문지르며 제가 몸부림친 흔적이 그대로 남은 이부자리를 바라보고, 은수가 사주었던 인형 초코를 한 번 바라본 다음, 깡똥하게 낡은 잠옷 바지 발목을 조금 끌어내렸다. -를 만난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악몽은 그러나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닌지 이따금씩 무수하게도 저를 짓눌렀다. 멍하니 곱씹듯 제 입술을 깨물며 초코를 끌어안던 은하는 이내 손을 뻗어 충전된 스마트 폰 잠금 화면을 열었다. 여러 번 망설이듯 머뭇거리던 손가락은 카카오톡을 열어 네게 메세지를 전송했다.



 -한아, 자나?



 답장을 바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안 온다고 해서 섭섭하지는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연락한 제 잘못이었다. 이렇게 연락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네게 연락을 한 것은 그저 여기 이 곳에, 이 세계에 나 혼자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고 싶었던 탓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네가 있는 이곳에, 내가 정녕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사실을 말하자면, 그 언젠가 부모님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네가 사라진 것은 아닐지 그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한아, 이요한. 너, 정말 거기 있니-? 엄마처럼, 아빠처럼, 나 혼자 두고 어디로 가 버린 건, 아니지? 


 혹시나하는 두려움에 숨조차 삭아들고 눈물조차 메말라갔다.



 -뭐야, 묘은하. 남편 보고 싶어서 연락했냐.



 그러니 뒤이어 울린 전화벨과, 졸음이 뚝뚝 묻어나오면서도 나를 찾는 네 목소리에 울어버린 것은 속상해서가 아니라 안심해서였다. 당황한 네 목소리가 억누르지 못한 오열 사이 맺히는 것이 감사하고도 또한, 기뻐서. 내가 사랑하는 요한아.



 "한아아-."

 "묘은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애교가 많아졌냐."



 멀리서부터 요한의 인영이 보이자 은하는 그대로 달음박질쳐 달려와선 품에 덥썩 안겼다. 피식 웃으며 은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바닥의 온기에 다시금 눈물이 울컥거리며 밀려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요한이 걱정하는 건 보고 싶지 않은지 대답하지 않고 안긴 품 속에서 옷깃만 꾸욱 그러쥐기를 한참, 그제야 활짝 웃으며 은하는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더 이뻐가 그랬다이가."

 "뭐래. 이요한이 안 잘생겼던 적도 있었냐."



 평소처럼 뚱하니 대답하면서도 은하의 말이 싫지 않은 듯 웃음기를 머금은 요한의 대답에 버릇처럼 손을 꼭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요한의 얼굴을 보고 커다란 손을 잡으니 이제서야 겨우 꿈과 현실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기, 너와 내가 서 있는 곳이 현실이며 부모님을 잡아먹은 어둠과 파도 소리는 내가 만들어낸 몽환일 뿐이라고. 그러나 무의식중에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요한은 앞장서 걸어가던 은하의 손을 끌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묘은하. 괜찮아? 어디 아파?"

 "어어? 아니,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새벽에도 그렇게 울어놓고. -혹시 무슨 일 있어?"

 "...그기 아이라."



 얼버무릴 것처럼 입술을 몇 번 여닫던 은하는 결국 물기 어린 눈을 깜박거리며 운동화 코를 바닥에 툭툭 쳤다.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나오던 습관이었다. 언젠가, 요한에게 제 부모님이 돌아가던 날에 대해 얘기할 때처럼 툭툭, 낮아지는 소리.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흐린 하늘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아, 악몽... 나쁜 꿈을 꿔가 글타이가. ...한이 니도 없고, 아무도 없는, 그런 꿈..."



 어린애처럼 꿈을 무서워한다고 네가 놀릴까, 입술을 꾸욱 깨물며 일 없이 잡은 요한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던 은하는 느닷없이 저를 안는 품에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도 항상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던 요한은 언제나처럼 빙글 빙글 웃는 낯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보 묘은하네."

 "-어? 뭐, 뭐라노, 바보 한이가?"

 "내가 묘은하 두고 어딜 가. 안 그래?"



 장난스럽게 웃는 표정과 말투와는 다르게 은하를 끌어안은 팔은 따뜻하고도 또 묵직해, 은하는 저도 모르게 풋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지. 너는 나를 두고 가지 않을 거지. 온 몸을 온화하게 휩싸고 도는 안도감에 은하는 요한의 미소를 따라하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네 두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시린 공기에 차가워진 뺨을 두 손으로 데워주고 난 뒤, 마주한 얼굴에 한껏 뒤꿈치를 들어 뽀뽀한 은하는 배시시 웃으며 네 손을 다시금 꼬옥 쥐었다.



 "맞다. 우야노. 한이 니가 갈라해도 내가 안 보내줄낀데, 그체?"

 "-너가 가라해도 안 갈게, 묘은하. 은하야."



 평소라면 낯 간지럽다며 네 뺨을 늘리거나 소리 내어 웃었을 은하지만, 이번만큼은 잠자코 온기를 나누어주는 네 손을 그러 쥐었다. 잡은 두 손 위로 올해 너와 내가 함께 보는 첫눈이 소리도 없이 조용히, 온화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떨어져 내렸다.



 "-좋아한디, 한아."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겨울 사랑


공미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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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밤은 별이 무수했다. 무수한 별들은 속삭임보다도 조용히 천공을 가로질러 숨결에 섞이곤 했다. 그 밤, 무거운 밤. 무겁고, -환희로웠던 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도 3개월도 전의. 그 날 밤을 떠올리면 심장이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뛰는 듯 했고, 숨결이 가빠져왔다. 네가 내게로 달려오는 그 모습을 무수히 떠올리고 억겁처럼 상기해봐도 그 떨림이 가시질 않아서, 심장이 멎는 것은 아닐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네가 내게로 온 지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적 같은 네가.



 그에 결국은 지청은 나른한 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하늘거렸다. 단정하게 교재의 표면을 가리웠던 손가락이 움직이자 무심코 그 손가락에 시선을 박아놓았던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당황에 젖었지만 드물게도 알아차리지 못한 지청이었다. 단조로운 목소리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던 전기 철학을 늘어놓던 지청이 한숨을 쉬자 고요하던 강의실 전체에 일시적으로 침묵 섞인 소란이 일어나는 듯도 했다.



 "-네... 그럼, 아가씨들... 여기까지, 할까요...?"



 강의실 한 켠에 얌전히 놓여있던 시계에 시선을 던진 지청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자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눈초리에 경악을 담았다. 2시간 연강이 있다면 100분을 꼬박 하고도 모자라 10분을 더 하기로 악명이 높은 모지청이었다. 그런 모지청이-물론 8분 정도였지만- 수업을 일찍 마쳐주다니-? 당혹스럽다 못해 경악스러운 그 눈빛을 아는지 지청은 반쯤 감긴 눈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에게 천천히 시선을 맞추었다.



 "으응, -아가씨. ...그래서, 싫어요...?"



 나비 날개보다도 우아하게 접혀 눈웃음을 보내는 지청의 물음에 남학생은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산발적으로 표지가 덮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여나 지청이 마음을 바꿀까 우렁차게 대답한 학생들이 떠나가는 강의실에서, 지청은 잠깐 다시 한 번 더 느른한 숨을 내뱉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보헴 시가 곽을 꺼내었다. 빈 담배를 입에 물고 교재를 정리하던 지청은 문득 생각이라도 난 듯 아직 책을 정리하고 있던 여학생을 불렀다.



 "으응, 저기... 아가씨...?"

 "-네, 교수님."

 "만약, 아가씨가 선물 받으면, -뭐가, 좋을까요...?"



 제 눈을 쳐다보는 지청의 눈은 선악과를 따다 문 뱀과도 닮아있어, 여학생은 잠깐 소름이 돋아오는 제 팔을 문지르다가 이내 무난한 대답을 내놓았다. 여학생의 대답에 한참을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리던 지청은 그제야 생긋, 나긋한 미소를 담배와 함께 입술에 물고 소리도 없이 천천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지청의 손에는 꽃 한 송이와 함께, 무언가가 들어있는 큼지막한 종이 봉투가 들려있었다. 역에서 내려 골목길로 4-5분만 걸어가면 이내 소란스러운 거리와는 믿을 수 없게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거리가 펼쳐졌다. 그 조용한 집에서 단정한 표정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지청은 조금 걸음을 서둘렀다. 선물이라면 아무래도 꽃이겠지요, 라고 말한 여학생의 조언을 충실하게 받아들인 지청은 커다랗게 얇은 꽃잎을 반쯤 펼친 라넌큘러스 꽃송이에 잠깐 시선을 맺었다. 꽃집에서 살 때에는 괜찮겠지 싶었지만 아무래도 한 송이는 적어보였다. 돌아갈까 어쩔까하는 새 이미 닿아버린 발자국에 결국 지청은 느린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검아, 나, 왔어요...?"



 불이 꺼진 거실에 들어서 습관적으로 불을 켰다. 아마 제 사랑스러운 연인은 저녁 어스름이 내린 줄도 모르고 제 방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터였다. 어느샌가부터 거실에 제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수조로 다가가 다섯 마리 물고기들에게 인사를 한 지청은 여전히 그 소리 죽인 발걸음으로 네 방문으로 다가섰다. 문밖에서도 희미하게 코 끝을 스치는 테레빈유 냄새를 맡으며 지청은 살짜근 불빛이 내려앉는 문을 조용히 열었다.



 "아, 벌써. -청아, 왔어요?"



 역시 지청의 예상이 옳았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검학은 지청의 얼굴이 보이자 반색하며 일어나 허둥지둥 앞치마를 벗고 제게 달려왔다. 눈 아래 흔들리는 검학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청은 언제나 그랬듯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손바닥 안에 와닿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쓸어주고나서야 몸을 뗀 지청은 반쯤 감긴 느른한 홍채로 널 쳐다보다가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꽃을 건네주었다. 옅은 분홍색을 띠고서 반쯤 벌어진 꽃은 한 송이의 자태만으로도 충분히 묵직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붉은 입술에 언제나처럼 고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지청은 조심스레 제 뒷머리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냈다.




 "내 예쁜 아가씨, 검이한테 주려고, 사왔어요..."



 꽃말은, 매력이라는데... 나직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새까만 눈을 크게 뜨고서 지청과 꽃을 번갈아 바라보던 검학은 하얀 뺨에 엷은 꽃빛을 덧씌운다. 부끄러운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고맙다고 웅얼거리듯 작게 말하는 검학을 다시금 품 안에 안아든 지청은 그 이마 위에 살짝 입술을 댔다. 마주친 지청의 얼굴도 검학을 따라서 조금 붉어졌다. 조금 더 몸을 낮추어, 부드럽게 흐트러진 네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그 귓가에 달콤하고도 고요하게.



 "축하해요, 우리. -사랑해요, 내 검아."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공미포 2,008

-

늦었습니다 너무했지요 청님 ㅠㅠㅠㅠㅠㅠ제가 컾록을 안 써드린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100일에는 꼭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약속 때문에 하루 늦게 완성했네요ㅠㅠㅠ

언제나 우리 청이 이뻐해주셔서 감사하구ㅠㅠㅠ

사랑해요 청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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