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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7.13 [창작/문율] 설정
  3. 2016.06.20 [창작/천호지후] 나의 꽃 그늘
  4. 2016.05.27 [창작] 채지후

16살의 그 겨울 이래로 묘은하는 겁이 많아졌다. 새카맣게 여울지는 밤을 무서워했고, 아가리를 벌린 어둠을 두려워했다. 짧게 제 발목조차 가리지 못하는 스누피 잠옷과 제 인형 초코가 아니면 잠조차 못자는, 어린 아이 같은 묘은하. -실은, 그 16살의 겨울 이래로 한 치도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는 가느다란 슬픔에 잠기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도 이 어린 정신은 자라지 못해, 홀로 자취방에서 잠 못 이루는 밤들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새벽녘, 제가 끄지 않고 잠든 브라운관의 새파란 잔광이 유리창에 날개를 펴는 것을 보며 은하는 울음을 삼키곤 했다. 제 이름처럼 아득하게 펼쳐진 어둠 속은 저 홀로 별세계로 떨어뜨려 놓은 것마냥 잠들어 뒤채지조차 않았다. 심장을 갉아먹으며 잠든 평온한 밤 속에서, 혼자서 시커멓게 물들어 가쁜 숨을 토해내는 제가 무섭고도 경멸스러워, 단음을 명멸하는 브라운관에 기대어 오래 새벽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의식처럼 잊힐 때쯤 제 꿈에 파고들어와 낯선 숨결을 나울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결이 아니고서야 울지 못한 것은, 제 형 은수조차 몸부림치며 눈물을 삼키던 옛 기억 때문이었고, 아직 덜 자란 제 청춘에 바치는 기묘한 제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서 묘은하는 겁이 많았고, 그래서 묘은하는 온기를 갈구했다.



 타인이 곁에 있다면 먼저 손부터 잡아 그 온기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은 강박처럼 제를 옭아매는 잔향이었고, 고치기 힘든 버릇이기도 했다. 그 날, 제가 부모님 손을 잡아주지 않은 탓에 그리되었다고 믿는 저로서는 최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습관. 습관처럼 제 뒤를 따라붙는 그 어둠만큼이나 공허하고 애달픈 흔적.



 그 흔적은 끈질기게도 고통스러웠다. 부러 창피함을 무릅쓰고 숙면을 위한 초코와 낡은 스누피 잠옷까지 챙겨왔더랬다. 그러나 이를 드러내는 어둠은 묘은하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던지 여름 합숙까지 저를 따라와 또 다시 후두를 짓쳐 눌렀다. 요란한 숨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그 새벽, 달이 나울거리는 그 아름다운 밤에 저도 모르게 쏟아진 눈물을 닦아내며 나간 복도에서 너와 마주했다. 어둠은 무서웠고, 홀로인 그 새벽도 무서웠지만. 네 손을 쥐었고, 다시 네가 내 손을 잡아준 덕에 숨소리가 고요해졌다.



 숨소리만 고요해진 것이 아니었다.



 네가 들려주는 고요한 여름밤의 피아노를 들으며 은하는 아득한 하늘을 떠올리고, 묘막한 공허를 생각했다. 팔 벌린 네 품에 안겨 소리 죽인 눈물을 흘리면서 제 형에게조차 보여주지 못했던 슬픔을 쏟아냈다. 그때부터였을까, 네가 내 우주를 채우기 시작한 것이.



 도서실은 은하의 또 다른 우주이기도 했다. 그 우주에 저를 가둬놓았던 네가 밉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리라. 겁 많은 것을 빤히 알면서 홀로 저를 가둬놓는 네게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유를 알고 나자 말간 웃음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너뿐이라는, 그런 말을 듣고 나서야 문을 열어주었던 너.



 사실은 나도 너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말했제. 내 사랑 안 쉽다고. ...받아줄끼가.

...한아. ... 내 별, 되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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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banera_

2016. 7. 13. 10:51

[창작/문율]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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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7. 15:10 자캐

[창작] 채지후

소년은 고요하게 고개를 들었다. 시선 가까이에서, 바람보다 가벼운 무언가가 곰실거리다 사라졌다. 가냘프게 여름을 닮은 햇빛이 채지후라고 쓰인 이름표 위에서 긴 다리를 끌었다. 소년은 창문에 흘러내리는 늦봄녘 태양에게 눈썹을 찡그리고는 가볍게 허리를 펴 길게 팔을 뻗어 기지개를 폈다. 익지 않은 흰자처럼 햇살은 소년의 하얀 얼굴 위를 건너다가 선명하게 붉은 입술 아래 오른쪽에 살짝 찍힌 점 가까이에서 명멸했다.



그 순간, 까닭도 모르게 소년은 결심했다.



-최근 가장 좆같은 단어는, 열여덟이다.



열여덟이라는 나이는 참으로 교묘하다. 다 큰 듯 성숙해보이지만 예기치 못한 곳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위태하다는 말도 싫지만 건실하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재미있을 정도로 쉽게 허물어지는 시간을 몇 번이나 헤아려야 하는지. 허물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에 끝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지독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허물을 벗는 것을 포기하기에 나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고, 허물을 벗어 던지는 것에 익숙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다. 그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나의 나이를 일컫는 단어를 가장 싫어하게 되어 버렸다.

 

 

“씨발.”

 


신경질적으로 캔을 들었다. 500ml짜리 맥주 캔은 이미 반 넘어 빈 채 덩그라니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초록색 하얼빈 캔은 살짝 우그러진 채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초록 양장의 수학의 정석곁에서 멀거니 밤이 드리워진 소년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소년은 짜증스레 나머지 술을 마저 핥아 마시고는 손에 쥔 연필에 힘을 주고 제 앞에 얌전스레 놓인 문제집을 갈겨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편모 가정, 건실한 학생, -애주가.

 

 

소년은 분노 장애로 가정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족속을 기억하지 못했다. 9년 전 어머니가 눈가에 보랏빛 멍이 들어 굳은 얼굴로 소년과 함께 떠나올 때부터 이미. 철없게도 사람의 몸에서는 피어날 수 없다던 색이 알록달록하게 피어난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것이 그 기억의 전부였다. 그 이후로 줄곧,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대견한, 최근 보기 힘든 건실한 학생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이었다.

 

 

그러나 제 몸에 흐르는 개새끼의 피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소년은 즐겨 술을 찾았다. 평소에야 일주일에 맥주 두 캔 정도로 끝내는 바였지만, 가끔 시험을 죽 쑤거나 돈이나 밝히는 교사라는 족속들에게 짓이겨져 온 날에는 어김없이 참치 캔 하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키기 일쑤였다. 집 아래 구멍가게 할머니는 어두운 표정만 보아도 반사적으로 캔 하나와 소주 한 병을 내밀 정도로 소년의 가식적인 성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서는 어머니 또한 이를 모르지는 아니하였으나 그 외에는 별달리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지라 “-빈 병 쌓아두면 벌레 생긴다라는 짤막한 한 마디로 눈감아주는 식이었다. 학교에서는 온건하고 착실한 학생으로, 집에서는 술 취해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낮은 욕지거리를 내뱉는 금수새끼로.

 

 

그렇게 소년은 내리 세 해를 그리 살았다.



채지후, 열여덟살. 경도고등학교 2학년 227. 키는 181cm, 몸무게는 74kg. 취미는 독서, 특기는 배구.



어울리지 않게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쓴 신상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몸을 굽힌 글씨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 안에서 헤엄쳤다. 열여덟 살의 나는 심지어, 참을 수 없는 글씨체마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반쯤 절망하면서 몸을 길게 엎드렸다. 어디서인지 아주 머나먼 곳에서 울리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서 새근거리며 잠들었다.



날숨과 들숨은 의미도 없이 내 폐를 들락날락거리곤 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의미 없는 숨소리가 나열되는 것처럼, 교탁에 선 선생님이 말하는 내용들은 뇌리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사실 어디로 가든, 나는 그저 내가 아니면 좋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나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벼랑 끝에 몰아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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