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잘라 말한 마키는 아오키를 돌아보지 않는다. 가슴 높이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맑은 밀색. 황금을 연상시키는 그 색을 바라보다가 목덜미에 시선을 멈춘다. 셔츠 너머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희고 곧은 목덜미가 밀 색 머리카락을 밀어올리며 조용히 공간을 차지한다. 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차고 하얀 그 목덜미에 이를 세우고 싶은 욕망이 부풀어 올라 아오키를 채운다. 척추를 지나 말초신경까지 차오르는 그 욕망에 아오키는 요란하게 머리카락을 짓이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마키를 따라갔다.


 "사망 전날부터 돌려봐."


 깍지낀 손등에 턱을 괸다. 아오키가 재생버튼을 누르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방 안에 영상이 채워진다. 밤을 찢어 발기는 영상 안에는 타나카 잇세이의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호인이라고 일컬어지던 평판은 거짓이 아닌지 그를 돌아보는 표정은 모두 방글 방글 웃고 있는 얼굴들이다. 반갑게 말을 거는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일에 집중한다. 마키와 아오키는 타나카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나하나 대조하며 영상을 바라본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일하는 모니터와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뿐이자 마키는 섬세한 손가락으로 턱을 감싼다. 아오키도 말없이 허리를 펴고 굳었던 몸을 푼다.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네요."
 "말 그대로 성실한 사람이군. 모두에게 상냥하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려나."
 "장밋빛일까요?"


 마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피곤했을 그를 이해했는지 아오키가 구석자리에 있는 소파에 담요를 펼친다.


 "저, 실장님. 피곤하실텐데 눈이라도 좀 붙이시겠어요? 우선 제가 1차적으로 돌려보고 이상이 있으면 깨워드리겠습니다."


 날카로워지는 눈매에 찔금거리면서도 할 말은 제대로 마친다. 한동안 아오키를 노려보던 마키는 늘어지는 눈꺼풀을 어쩔 수 없는지 신신당부하며 소파에 드러눕는다.


 "30분 뒤에 꼭 깨워. 혼자서 보지 말고! 둘 다 1시간만 쉴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마뜩찮은지 몇 번이고 아오키를 돌아보다가 금세 잠들어 고요하게 숨을 내쉰다. 가늘게 공간을 채우는 마키의 숨소리가 침묵하는 허공을 메운다. 소리에 색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 마키가 내뱉는 날숨은 백색일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붉은 색.


 아오키는 저도 모르게 마키에게 다가서는 본인을 힐난하면서도 바라보는 눈을 멈추지 않는다. 솜털이 일어날 듯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보송보송하고 혈색이 도는 복숭앗빛 뺨과,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속눈썹. 정지한 영상의 광입자들조차 숨죽여 모이게 만드는 길고 섬세한 속눈썹이, 붉게 숨을 틔워내는 입술이 못 견디게 애닯다. 가만 가만, 공기조차 거스르지 않게끔 손가락을 뻗어 살짝 벌어진 그 산호색 입술을 건드린다. 규칙적인 숨결이 맞닿은 아오키의 손가락 위로 작게 소용돌이를 그린다. 그 움직임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방비한 아이같은 동안에 결국 아오키는 손을 거두고 자리로 돌아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을 끌어안는 환영을 지워야 하는지.


 나는 누구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을 죽일 것이다. 당신이 품고 있는 그 비밀이 얼마나 크던간, 얼마나 중요하던간에 내가 당신의 뇌를 부숴버린다면, 뭉개버린다면, 당신은 평안히 잠들 수 있겠지. 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이다지도 따르고 아끼고-, 사랑하는 나는 누가 죽여줄까.


 -이튿날 '제9'에는 두 명의 용의자가 도착했다. 한 명은 츠키야마 카오루. 다른 한 명은 키타이치 코타로. 키타이치는 타나카의 직장 동료로 사망 전날 회식 자리에서 무의미한 시비를 걸었다고 영상에서 체크 된 인물이었다.


 연행된 키타이치는 당황한 모습으로 연신 본인이 무죄임을 주장했다. 물론 타나카에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지만 타나카에게 맞지는 않고 본인은 때리기만 했다고 한다. 오히려 원한이 있다면 타나카로, 본인은 고집을 부리고 때린 그 상황에 대해 다만 미안한 감정만 남아 있다고 진술하였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평을 종합해보았을 때 키타이치는 타나카에게  꽤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호세이 대학 출신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키타이치는 직장 동료와 트러블이 많았다. 그에 비해 사회성도 좋고 일처리도 빠른 타나카와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알고나서 키타이치는 걸핏하면 타나카의 험담을 하기 일쑤였고, 일에 있어서도 타나카에게 떠넘긴다거나 일부러 실수를 한 채 보내는 등의 유치한 일이 잦았다고 한다.


 "하. 정말 유치하네요."
 "유치하다는 것조차 모를 걸."


 선명하지 않은 경멸을 담고 내뱉었다. 그런 아오키를 흘끗 바라본 마키가 중얼거리면서 쥐고 있던 볼펜을 딱딱거린 뒤 오카베에게 서류를 인도받았다. 서류 안에는 타나카의 주변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눈썹을 찡그리면서 서류를 훑어보던 마키는 고개를 저으면서 츠키야마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츠키야마 카오루 씨?"
 "네, 맞습니다."
 "타나카 잇세이 씨의 가장 절친한 친구, 맞으십니까?"
 "-네."


 사진에서보다 조금 수척한 얼굴을 지닌 남자가 조용히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키가 큰 츠키야마는 조용한 분위기를 띤 사람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질문에도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츠키야마가 대답하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마키는 심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작스레 마키가 들어서자 당황한 우노를 눈짓으로 보낸 뒤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쳤다.


 "타나카 잇세이와는 어떻게 친해지셨습니까?"
 "잇세이는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였습니다. 처음 초등학교에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도 잇세이였습니다. 그 이후로 쭉 친하게 지내왔고,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잇세이가 대학에 갔을 때에는 지역까지 달라졌지만 그때에도 꾸준히 서로 연락하고 자주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담담하게 말을 잇던 츠키야마는 결국 말을 하다 말고 벅차 오르는 눈물에 이를 악문다. 방울 방울 샘솟은 눈물은 야위고 붉은 눈가를 지나 턱으로 뚝뚝 흘러내린다. 한동안 억눌린 오열을 흘려내던 츠키야마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상당히 적의에 찬 눈으로 마주 앉은 마키를 내려다 보았다.


 "당신들이 나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혹은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건 나라고 말하고 싶군요."
 "누구도 당신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착각하고 계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라사키 씨께서도 잘 증언해주셨거든요."


 무라사키의 이야기가 나오자 츠키야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면도도 하지 못해 꺼칠하게 오른 수염과 대조되는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마키는 사무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무라사키 씨께서는 굳이 이 '제9'에 전화를 해서 그 날 밤 당신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해주셨습니다. 20년지기 절친한 친구를 잃은 카오루 씨의 마음도 좀 헤아려달라고 하시면서. 좋은 약혼녀를 두셨군요. 타나카 씨가 사망하던 날 오전부터 쭉 같이 있으셨다고, 필요하면 영수증이라도 보내드리겠다고, 까지."


 말을 마친 마키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본인이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우노에게 다시 츠키야마를 넘겼다.


 그리고 며칠 후, '제9'의 사람들은 그의 약혼녀 무라사키 하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제9'에 직접 찾아왔다. 츠키야마 카오루가 남긴 유서를 들고서.


 "속이 시원한가요? 20년지기 친구를 잃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 자살로까지 밀어넣으면서, 마음이 편하시던가요?"


 밤색 머리카락이 온통 흐트러진 채, 눈가와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진 채 찾아와 울부짖는다. 피를 토해내는 듯한 오열에 아오키는 가슴에 매달린 무라사키를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타나카 잇세이의 죽음에 죄를 고백하며 자살해버린 츠키야마의 소식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20년 동안 친하게 지내왔지만 결국 나는 잇세이의 대등한 친구는 될 수 없다는 절망에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유서에 쓰여 있었다.


 "당신들을 저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결코-"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경비원들이 무라사키를 떼어내자 그녀는 절규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 뒷모습에 아오키가 씁쓸하게 재킷을 터는 모습을 보던 마키가 다가온다.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쳐 잡아주며 마키는 아오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츠야마에 들린 것은 맞지만 오후 11시 전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선불로 지불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츠키야마 씨는 오히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었습니다."


 아오키가 조심스레 마키에게 조사한 결과를 내밀자 마키는 곁눈으로 보고서를 보더니 아오키를 앉힌다. 햇볕에 잘 재운 청결한 향기가 마키의 옷자락에서 묻어나온다. 아오키가 앉자마자 마키는 손깍지를 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진지한 눈으로 그를 응시한다.


 "아마도, 타나카를 죽인 사람은 무라사키일 거야. 범행 날 타나카의 멘션 주변에서 무라사키와 닮은 여성을 보았다는 증언을 들었어. 이미 '진범'이 자살한 지금에서야 쓸모가 없어졌지만."
 "그럼, 도대체 왜-?"
 "무라사키가 타나카를 죽인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정이 얽힌 이야기이지. 츠키야마는 아마, 무라사키를 감싸기 위해 그런 일을 꾸몄을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타나카는 무라사키를 사랑했어. 아오키 너는 츠키야마가 타나카를 동경, 혹은 질투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정반대였을 거야. 타나카야말로 츠키야마에 대한 질투와 증오로 힘겨워했었지."


 사랑하는 여인조차 자신을 택하지 않았다. 누구나 본인과 잘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본인과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고요하고 침잠한 츠키야마를 고민의 토로 상대로 택하곤 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너무 쉽게 가지고도 나를 위로해주는 네가, 나는-.


 "저-, 실장님."
 "무슨 일이지?"
 "하아, 그, 저기-."


 우물쭈물대던 소가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마키를 연구실로 인도했다. 연구실에는 무라사키가 보낸 츠키야마의 유체가 놓여 있었다.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며 보내왔더군요. 그런 연유로는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너희들이 그리도 원하던 진실은 이 머릿속에 있을 거라며 악을 썼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마키는 싸늘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눈을 감은 츠키야마를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미 끝난 사건이니 더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무라사키가 인수하지 않는다면 가족에게 돌려보내."
 "곤란하게도 츠키야마는 고등학교 시절 양친을 잃고 그러면서 친척들과도 연이 끊겼다고 합니다. 유일한 가족은 그녀뿐입니다만."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시체 뒤치닥거리까지 해야 하게 된 거지? 똑바로 전하도록 해. 이미 이 사건은 츠키야마의 범행으로 종결난 것이라고.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고집부리다간 공범으로 감옥에 처넣어버린다고 말해."


 평소보다 한층 수위가 높은 마키의 독설에 우노가 당황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자 아오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오키는 대형 스크린이 펼쳐진 영사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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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책 속 한 구절을 삼킨다. 바스라지듯이 옅은 머리카락을 밤의 물결 사이로 띄우면서 마키는 천천히 몸을 늘렸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희게 눈을 메우는 목을 한 바퀴 크게 돌린 후 돌아보지도 않고 아오키에게 손을 내민다.



 "아오키, 커피."

 "아-, 넵."



 이번에 들어온 뇌는 30대 초반 남성의 뇌로, 도쿄의 한 멘션에서 발견된 사체이다. 직접적 사인은 흉기에 의한 심장 파열 및 과다 출혈. 그 날 저녁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술 냄새를 풍기며 침대 위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되었다.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연인도 없는 조용한 독신 남성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살해당할 이유가 없다, 너무나 억울하다는 유족 측의 말에 따라 '제9'로 인계되었다. 더 이상 죽음으로서도 침묵할 수 없는 현실에 아까 떠올랐던 구절 위로 줄을 그으면서 마키는 재생 키를 눌렀다.



 "어라? 이게 무슨."

 "꿈인가 보군."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루브르 박물관 앞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유리의 피라미드가 이내 투명하게 빛을 받아 형상을 바꾸어낸다. 그토록 거대했던 유리 피라미드는 이내 붉은 색을 띤 유리 장미로 형태를 변화시켰다. 아무리 보아도 현실세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규모의 영상에 마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대략 오전 0시에서 1시 사이.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겨울의 온도를 고려해 오차 범위를 감안해도 오후 11시 이후이다. 특히나 그 날은 회사 전직원이 참여하는 회식이 있었다고 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보니 거의 그쯔음으로 확정이 난 상태였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 남자는 살해당하는 그 순간까지 잠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좀 더 앞 선 시간에 있었던 회식 자리를 살펴볼까요?"

 "아니, 조금 더 내버려둬."



 당황하는 아오키를 저지하고서 마키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마키의 투명한 각막 위로 떠오르는 영상을 흘끗 훔쳐보던 아오키도 이내 긴장하고 꿈이 펼쳐지는 스크린을 직시한다. 한없이 붉게 만개한 유리 장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보랏빛이 감겨든 장미가 되어 한 남자의 손으로 옮겨간다.



 "마, 마키 실장님."

 "아아. 본인인 듯 하지. 누구에게 줄 건지가 궁금해."



 한없이 진지한 눈으로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아오키는 황급히 살해당한 남자 주변 인물의 신상과 사진이 담긴 타블렛을 켠다. 이윽고 흐릿한 형태는 뚜렷해지며 남자를 향해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무라사키 하루라고 하는 여성입니다."

 "쉿. 잠깐 더 볼 게 있어."



 스크린에 여성의 영상이 비춰지자 아오키가 바로 그에 상응하는 여성의 이름을 입밖에 낸다. 그러나 마키는 아오키를 살짝 돌아보고는 다시 스크린에 눈을 고정한다. 남자는 머리를 한 번 긁적거리고는 타블렛에 띄운 사진보다 아름답게 비쳐진 하루에게 들고 있던 보라색 장미를 내민다. 그리고나서 옆을 보자 장신의 남자가 웃으면서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저 남자는 누구지?"

 "그게 저기, 아, 여기 있습니다. 츠키야마 카오루. 피해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합니다."

 "저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져오도록."



 그리고는 곧장 몸을 일으킨다. 비틀거리지 않는 마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오키는 나즈막히 숨을 내쉰다. 다행히 이번 남자의 뇌 영상은 그다지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물론 처음 유리 피라미드가 나타났을 때에는 깜짝 놀랐지만 평소 보는 영상에 비하면 놀랄 것도 없다. 아오키는 이미 식어버린 마키의 커피 잔을 들고서 방을 나섰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연인이란 거지?"

 "네. 약혼자라고 합니다. 남자 쪽인 츠키야마 카오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이 34살, 피해자 타나카 잇세이의 가장 오래 되었고 절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대학교에는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및 직업을 전전하다가 3년 전 잇세이가 소개시켜 준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타나카는 호세이 대학교 출신이라고 했나? 꽤 친구 사이의 갭이 크겠군."



 오카베가 끼어들자 아오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잇는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타나카 잇세이 자체가 성실한 인물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인이라 소문이 나있습니다. 특히 츠키야마의 약혼자 무라사키는 타나카가 소개해줘서 약혼까지 가게 된 케이스라고 합니다."

 "어이쿠. 직장에다가 약혼자까지. 츠키야마는 타나카가 은인이겠구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츠키야마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잇세이를 위하여'라는 말로 자주 건배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주변 친구들도 두 사람이 지닌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기는 하더군요."



 오카베의 비아냥에 아오키 또한 마뜩찮은 눈으로 보고서에 출력된 츠키야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얼굴과 쌍커풀이 없이 기름한 눈. 싱글 싱글 웃는 모습이었던 타나카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서로의 인상만 두고 보아도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우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도 전개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 밤새 술을 마실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표면적인 것 뿐이다. 맑게 꽃잎을 피워 올린 연꽃이 그 아래에서 얼마나 깊은 어둠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다. 영원한 침묵은 죽음이라 생각했지만, 과연 갈가리 찢긴 죽음과 침묵 사이에서 어떤 것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인지.



 아오키는 잠깐 길게 뻗어간 침묵의 머리타래를 세아리다가 무라사키의 순서로 넘어갔다.



 "이 여성은 무라사키 하루. 아까 말씀드렸던 츠키야마의 약혼녀로 31살입니다. 타나카와 마찬가지로 호세이 대학 출신으로, 대학교 시절 들었던 천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타나카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졸업 후 소원해졌었는데 동아리 졸업생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다시 타나카와 친해져 츠키야마와 관계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혼식은 작년 가을, 올 봄에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짙은 밤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입가에 난 점이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생긋 웃고 있는 얼굴은 일견 수수해 보이지만 부드럽고 단아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나란히 떠오른 세 사람의 사진을 보고 있던 우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영 모를 분위기군요. 누가 보아도 재녀인 무라사키와, 능력 있는 호인인 타나카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지금 우리는 어울리는 커플 만들기가 아니라 타나카 잇세이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네만. 이 두 사람의 브리핑은 이쯤하고. 우노와 이마이는 저 두 사람의 사건 당일 행적을, 오카베와 야마모토, 소가는 타나카 잇세이의 인간 관계 및 개인적 원한까지 모두 알아올 수 있도록 한다. 나와 아오키는 그 날 행적을 다시 재생하겠다."



 카리스마 있는 마키의 지시에 모두가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마키 또한 아름다운 입술을 다물고 영상이 보관되어 있는 영사실로 걸어간다.



 "저렇게나 차이가 나면 친구로 남아있기가 불편하겠어요."

 "그럴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절취

...ㅠㅠㅠ젠장

시미즈 레이코님의 만화는 엔딩이 항상 먹먹해서 그랬는데

그 미모 보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ㅠㅠㅠㅠㅠ

우리 실땽님 ㅠㅠㅠ 그나마 하삐엔딩인 아오마키라 다행입니다.

현 시점은 타키자와가 들어오기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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