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6. 16:53 2차 끄적
[하이큐/다이스가카게] 고백 下
다이치의 박력에 밀린 스가와라는 움찔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서슬에 눈가에 맺힌 이슬이 눈물점을 타고 뺨으로 밀려 내려온다. 스가와라의 뒷머리를 감싸고 흘러 내리는 눈물을 핥아 올린 다이치는 평소대로 싱긋 웃고는 스가와라를 꼭 끌어안는다.
"-좋아해, 코우시."
떠나가는 다이치를 배웅하고서 집으로 돌아온 스가와라는 기껏 어머니께서 준비해둔 마파두부도 먹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귄 지 5개월 만에 하게 된 첫 키스는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또한 무섭기도 했다. 오랫동안 다이치를 보아왔지만 처음 보는 모습에 당혹스러운 심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요하게 숨을 내쉬자 투명한 입김이 어두운 방 안으로 펼쳐졌다. 진주빛으로 떨어지는 달빛은 문간에 기대어 어둠이 틀어올린 머리타래를 천천히 세고 있었다. 감색 잉크를 떠올리게 하는 어둠은 온화하고 다정하게 스가와라의 어깨에 기대어 왔다. 온기가 겹친 어둠은 이내 까마귀를 닮은 머리카락을 생각나게 했다.
"-??!!"
스가와라는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떤 의식의 흐름으로 인해 카게야마가 생각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파랗게 어둠을 감아 삼키는 그 날카로운 홍채가, 이 따스한 어둠과 서늘한 고민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저, 대단한 후배라고 생각했다.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세터라는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천재 후배 녀석을, 상냥하고 온화한 선배의 마음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렇게까지 성인은 못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아낀 것도 사실이었다.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괴짜 속공은 분명 자신이 속한 카라스노 고교의 이름을 드높이고, 몇 번이고 코트를 밟을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이치와 아사히, 스가와라 세 명의 힘으로는 부족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순간 어째서 다이치의 얼굴 대신 카게야마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인지. 어째서 그 든든하고 상냥한 미소 대신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지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오랫동안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던 스가와라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스가 선배."
"-으, 어, 어?"
제대로 잠들지 못해 푸석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하품을 하자니 불면증을 만든 장본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새파랗게까지 느껴지는 짙은 홍채는 온연히 스가와라를 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스가와라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카게야마는 평소 보던 표정보다는 조금 더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와서 스가와라에게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이게 뭐야?"
"피곤해보이시길래, 잠 깨는 사탕임다."
수업 시간에 항상 잔다는 네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도 잠시. 뿌듯해하는 그 얼굴을 보자 스가와라는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 명랑하게 웃어 젖히던 스가와라는 보란 듯 사탕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싸한 민트향이 입 안으로 가득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문득 스가와라는 목 안에 걸려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았다.
"좋아, 카게야마."
뜻밖에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란 것은 오히려 스가와라 본인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카게야마 앞에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는 재빨리 사탕을 깨문다. 오도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든 스가와라는 억지로 웃으면서 손을 휘휘 내젓는다.
"네, 저도 좋아함다."
"응, 사탕이 좋네, 좋아. 잠이 확 깬다. 아주. 히나타한테도 나눠주지 그래? 수업 시간에 자주 잔다며, 너희."
"아뇨. 히나타는 이런 느낌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요."
"어?"
"선배를, 좋아한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멍하니 카게야마를 올려본다. 다를 것 없는 평온한 얼굴보다 먼저, 토마토처럼 붉어진 귀가 시야에 뛰어 들어왔다. 대답을 못하고 어버버하는 스가와라를 보면서 카게야마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좋아합니다. 스가와라 선배. 선배의 명랑한 웃음도, 상냥한 모습도, 가끔 보이는 장난도 모두 좋아함다. 공을 올리는 하얀 팔도, 모두를 바라보는 똑바른 눈도요."
"어-, 카게야마?"
"스가와라 선배. 좋아함다. -대답 해주시면 감사하겠슴다."
무언가가 굴러 떨어졌다. 깃털만큼이나 가볍고, 용광보다 뜨거운 감각이 눈가를 스쳐 뺨으로 길을 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방울 방울 구르는 스가와라의 눈물을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색이 옅은 머리카락을 감싸안았다. 차마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물만 떨어뜨리는 스가와라의 등을 오래오래 감싸주던 카게야마는 이윽고 무섭도록 진지한 눈으로 그와 눈을 마주했다.
"다이치 선배 때문임까?"
"너-."
"괜찮슴다. 그럼-, 기다리겠슴다."
"-."
"오래 걸려도 됨다. 다이치 선배랑 알콩달콩하게 사귀셔도 됩니다. 즐거울 만큼 즐겁고, 행복할 만큼 행복한 다음, 그 다음이라도 저는 좋슴다. 그러다가 혹여나 슬퍼지면, 외로워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주셔도-, 됩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울음을 참아 붉어지는 자신의 눈가를 모르는 카게야마는 애써 스가와라를 위로한다. 그 모습에 또 다시 눈물이 터지려는 그를 아이를 대하듯 부드럽게 다시 품에 안고 카게야마는 조용히, 그러나 명료하게 속삭였다.
"좋아합니다, 스가와라 코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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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후일담은 뭘까용
제 기준 다이치가 스가 마음 떠난 걸 알고 놓아주는 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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