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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9.22 [태오준호] white christmas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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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버스 차용



 "씨팔..."



 나지막한 한숨과 섞여 욕설이 흘러나오나 싶더니 이내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앞좌석의 헤드를 주먹으로 후드린다. 그 서실에 앞에 앉아 있던 최상무의 고개가 깊이 수그러들며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익숙한 그 욕설과 폭력에 기사는 잠깐 브레이크를 밟나 싶더니 다시 엑셀로 속도를 높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태오, 뱀과 같은 눈빛을 가진 사내는 잇새로 짓이기는 욕설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짜증스레 미간을 구긴 채, 제 뒤통수를 조짐스레 매만지는 최상무에게 말을 던졌다.



 "내가 꼭 가야 되는 겁니까?"

 "...예, 그, 실장님. -그, 형제 분들도 다들 자선 행사에 얼굴을 비치셨다고."



 나직하게 말을 읊조리자 이번에는 넓은 카시트에 털썩 몸을 눕히며 딱딱한 구두 밑창으로 소리가 나게 바닥을 두드려댔다. 이 천년 전에 벌써 뒈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놈의 생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 지랄들인지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놈의 빌어먹을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이 추운 날씨에 굳이, 성당까지 가서 등신 같이 빙긋거리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고. 태오는 카시트에 깊이 몸을 묻은 채 어차피 지겹도록 웃어야하는 얼굴, 지금이라도 마음껏 구기자는 심산인지 눈치를 보는 최상무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에 손톱을 대고서 창백하게 일그러지는 차창밖 풍경을 멍하니 주시했다.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태오 실장님."



 깔끔하게 쓸어넘긴 머리에 단정한 수트, 거기에 미끈한 코트까지 차려입고서 수많은 카메라 세례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미소를 지으면서, 태오는 카메라를 그대로 주먹으로 박살을 내버리면 저걸 들고 있는 새끼의 안구에 박히게 되려나, 실제로 결과가 궁금해지려는 생각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쓰레기 같은 베타 새끼들. 소리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조절하기 힘든 알파의 탐욕스러운 욕구가 언뜻 고개를 들려던 찰나, 다가오는 주교의 온화한 미소에 태오는 천천히 눈을 깜박거리곤, 냉혹한 기미를 모두 몰아냈다.



 "감사합니다, 조태오 실장님. 이번 기부는 올 겨울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별 말씀도 다 하십니다. 당연히 나누어야 하는 것을요."



 심장에는 커녕 뇌리에도 닿지 않아 목구멍으로 흩어져 버리는 말들을 지껄이다 문득 태오의 시선 끝에 무언가가 잡혔다.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저 뒤에서 제가 건넨 기부 박스들을 툭툭 치다가, 이내 다가오는 직원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빼는, 검은 옷의 사내. 멀찌감치 제 뒤로 떨어지는 눈길을 알아챘는지 따라 고개를 돌린 주교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저, 저 눔의 ..."



 뒤에 새끼가, 라는 말이 따라붙을 듯 일그러졌던 신부의 얼굴이 금새 평온해지더니, 태오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가 귀를 잡아챘다. 꽤나 큰 키를 가진 남자는 신부가 제 귀를 아프게 잡아당기는 것이 억울한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그 손길에서 벗어나려했지만 우악스러운 손에 결국은 포기했는지 얌전히 신부의 뒤를 따라갔다.



 "저, 실장님. 이제 가실 때가-."

 "아, 먼저 가요, 나는 여기서 더 볼 일이 있어서."



 행사가 끝나자마자 저를 데리러온 최상무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한 조태오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니까 분명히, 이 쪽...



 "-성모님, 지랄도 지랄이지요...? 돈만 내면 그 시꺼먼 짓거리들이 하얗게 변하기라도 한답니까?"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익살스러운 듯 높지 않은 목소리는 아까 보았던 찡그린 표정과 단정한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렸다.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 벽을 끼고 돌자, 하얗게 눈이 내려 어둠이 휘황해보이는 그 공간에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 앞에서 투덜거리는 남자의 긴 수단 자락이 먼저, 눈에 감겨들어왔다. 뒤에 태오가 온 줄도 모르고 한참 조태오의 악행을 줏어삼키던 남자가 후련하게 뒤를 돌아섰을 때, 마주친 그 뱀과 같은 시선에 소름이 오싹 돋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런, 신부님. 신부님께서 그리 험한 말을 쓰실 줄은 몰랐는데요."

 "sacrátus lingua. ...최 아가토입니다."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준호는 입술에 성호를 그었다. 하얀 손가락과 대조를 이루는 그 빨간 입술 위로 그어지는 성호는 이를 데 없이 고혹적이어서, 태오는 잠깐 숨조차 멈추고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를 잡아먹을 듯 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눈썹을 찌푸린 준호는 짧게 목례하고 그를 스쳐지나가려 했다.



 "저기요, 신부님."



 손목을 잡자 눈 속에서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내리는 눈꽃이 설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드는 향기에 태오는 천천히 눈을 깜박거리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준호는 낯설게 울리는 태오의 웃음이 마뜩찮은지 잡힌 제 손목과 웃음 짓는 태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신부님, 혹시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해요, 어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 우선 잡은 이 손 좀 놔주시죠...?"



 당혹스러워하는 준호를 모르는 척 태오는 단 내가 풍기는 준호의 손목을 끌고 손등 위에 눈송이가 떨어지듯 말을 쏟아냈다.



 "맷돌에 뭘 갈려고 뭐 집어 넣고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 황당하잖아."



 슬쩍, 눈이 가늘어졌다.



 "...존나, 신부님이 이렇게 야해도 돼요...?"



 순간적으로 준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알 수 있을만큼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헛웃음 치며 내쳤을 이 상황이지만 준호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메가. 남자뿐인 신학교에서도 저를 지독스레 감고 돌던 그 구속 같은 단어. 잊으려 했던 단어를 상기시키는 문장이 튀어나오자 본능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저를 노려보는 그 붉은 눈가에 태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닮은 그 하얀 로만칼라를 틀어쥐어 그 입술을 헤집었다. 동그랗게 뜨인 눈을 큰 손을 들어 가리곤 설탕을 녹인 듯 달큰하고 부드러운 그 입안이 부드러웠다. 마주한 입술과 뺨에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의 시린 감각은 차마 마주닿은 혀와 입술의 뜨거움에 순간적으로 녹아 사라졌다. 능숙한 솜씨로 여린 치열과 새빨갛게 젖은 입천장을 차례로 얽은 태오는 흐트러진 홍채로 눈을 피하는 준호에게 쿡, 목 안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침묵을 감아 떨어져내리는 낙설落雪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장식된 화려한 빛을 삼켰다. 겨울에 흐트러지는 꽃잎을 닮은 눈송이 새로 두 사람의 호흡만이 거칠게 공간을 채웠다.



 "하...흐, 조, 조태오 씨... 이, 러시면 안 됩니다..."



 거친 숨결 새로 밀려나오는 준호의 목소리에 태오는 살풋 눈썹을 찡그리며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미 태오의 커다란 손가락은 준호가 입은 수단 단추 몇 개를 풀어헤치고 겨울 밤과 함께 슬금 그 가슴께로 디밀어지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저를 위험스레 감아도는 알파의 페로몬 향을 겨우 참아 헤뜨린 준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태오의 손을 쳐내고 제 수단 옷깃을 매만졌다. 저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주제에 맹랑하게 구는 준호에게 다시금 고르지 못한 웃음을 터뜨리며 제 머리를 쓸어넘긴 태오는 의외로 순순히 두어 걸음 물러나 고개만 까닥하곤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에 긴 한숨을 쉬며 제 입술을 세게 문지른 준호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제 덜미를 잡아채는 손길에 컥, 길지 않은 숨결을 토해내야만 했다. 온기는 온기이되,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귓바퀴를 느리게 핥아내는 짐승의 호흡.



 "아가토, 신부님.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이번에야말로 흥미가 식은 듯, 귓바퀴를 힘주어 깨문 태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멀어져갔다. 아직도 몸에 남은 듯한 질척한 느낌에 잠깐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하니 성모상을 바라보고 있던 준호도 뒤숭숭한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다섯 번의 양치로도 씻어내지 못하는 그 감각에, 결국 소맥을 다섯잔, 연거푸 들이켜야하긴 했지만, 그저 그걸로, 저와 그 남자의 인연은 끝이라고만.

Posted by habaner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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