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레이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5.09 [비밀/아오마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下
  2. 2016.05.02 [비밀/아오마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中

 죽은 자는 말하지 않았지만 남겨진 뇌는 말하고 있었다. 절절하리만큼 가득찬 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남겨진 자로써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고통까지 지켜보아야 했다. 무라사키가 토해내는 짙은 원망과, 츠키야마가 가졌던 수많은 고뇌들은 지워질 수 없이 고스란히 온 각막에 아로 새겨졌다.



 뇌가 전하는 영상은 단순했다.



 츠키야마는 단 한 순간도 타나카를 잊지 못했다.



 그녀와 입술을 겹칠 때에도, 무라사키의 몸을 안을 때에도 언제나 뇌리 한 구석에는 타나카의 영상이 번져 있었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타나카. 부딪힌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는 타나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타나카. 어릴 적부터 퍽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츠키야마를 사람들 사이로 이끌어준 것은 타나카였다. 마치 각인 효과처럼 츠키야마는 그 순간부터 타나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 그득히 죄어오는 츠키야마의 고통과 사랑에 아오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그 사실에 절망하여 무라사키가 타나카에게 칼을 꽂고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자신을 끌어 안는 순간은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오키."

 "네? -아앗! 실례했습니다. 실장님! 그러나-, 그녀가 너무, 너무도-."

 "이 영상은 우리끼리 아는 것으로 하자. 어차피 진범은 츠키야마잖아."



 무라사키가 츠키야마에게 느낀 것이 사랑, 혹은 사랑을 빙자한 집착이었다면 츠키야마가 무라사키에게 느낀 것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호함조차 타나카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사실 속에서는 의미가 없어졌다. 타나카가 사랑한 무라사키를 위하여 츠키야마는 기꺼이 살인자의 오욕을 뒤집어 쓰기로 하였다.



 어쩌면-, 그런 마음조차 없을 지도 몰랐다. 츠키야마에게 있어 타나카가 사라진 세상은 무감각했으므로. 유령처럼 사느니 사랑했던 자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할 수 없으니-, 이제와서야 알 길이 없어졌지만.



 "실장님?"

 "어-, 어?"



 마시고 있던 잔을 입에서 떼고 아오키를 바라본다. 타코와사비를 안주 삼아 사케를 마시고 있던 마키도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아오키에게 꽤 놀란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마키 옆 자리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두자 마키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사케 잔에 입술을 댔다. 향긋한 사케 향기가 강하게 아오키의 후각을 죄어왔다.



 "웬 일이세요?"

 "나는 술도 못 마시냐. 그러는 너는 어쩐 일이야."

 "원래 친구 녀석이랑 한 잔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온다고 해서, 그럼 혼자라도, 이런 오기가 생겨서요. 그래도 오길 잘했네요."



 쓰게 웃으면서 잔을 들자 마키가 채워준다. 한동안 서로 말 없이 술을 삼키다가 마키가 고개를 들어 아오키를 바라본다.



 "오길 잘한 거 같아?"

 "네?"

 "오길 잘한 거 같냐고."



 처음엔 단순히 이 술집에 온 것이 잘한 것 같느냐는 물음 같았지만 마키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눈. 폭우가 잠든 북해같은 눈. 그러나-, 갈망하는 눈. 애쉬 카키가 들어찬 것 같기도 하고 밝은 갈색 같기도 한 그 눈은 마주한 아오키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겨우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당연하죠."

 "-그- 렇지."

 "실장님이 계셨잖아요."



 놀라서 고개를 드는 마키를 바라보지도 않고 스스로 첨잔하여 다시 술을 마신다. 2잔을 거푸 마신 아오키는 와이셔츠의 소매를 살짝 걷고 마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이 있어서, 좋다구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의 뇌에서도 알 수 있는 것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다. 나와 당신은 타나카의 생각을 무수히 읽어냈지만 자신을 향했던 츠키야마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 후에도 알지 못했다. 무라사키가 그에게 가졌던 반감은 또한 어떠한가. 사랑하는 자가 본인을 증오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살아있음의 증거로써.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 사실이 당신의 머리에 박히고 뇌 속에 박혀, 평생토록, 당신이 죽은 후에도 이 사실이 존재하도록. 살아있는 내가 살아있는 당신을 사랑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랑합니다, 마키."



===


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나 이정도면 떡쳐야지 시팔....ㅠㅠㅠㅠ

아 후일담으로 써야겠다 안되겠음 ㅠㅠㅠㅠㅠ

Posted by habanera_
 딱 잘라 말한 마키는 아오키를 돌아보지 않는다. 가슴 높이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맑은 밀색. 황금을 연상시키는 그 색을 바라보다가 목덜미에 시선을 멈춘다. 셔츠 너머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희고 곧은 목덜미가 밀 색 머리카락을 밀어올리며 조용히 공간을 차지한다. 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차고 하얀 그 목덜미에 이를 세우고 싶은 욕망이 부풀어 올라 아오키를 채운다. 척추를 지나 말초신경까지 차오르는 그 욕망에 아오키는 요란하게 머리카락을 짓이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마키를 따라갔다.


 "사망 전날부터 돌려봐."


 깍지낀 손등에 턱을 괸다. 아오키가 재생버튼을 누르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방 안에 영상이 채워진다. 밤을 찢어 발기는 영상 안에는 타나카 잇세이의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호인이라고 일컬어지던 평판은 거짓이 아닌지 그를 돌아보는 표정은 모두 방글 방글 웃고 있는 얼굴들이다. 반갑게 말을 거는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일에 집중한다. 마키와 아오키는 타나카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나하나 대조하며 영상을 바라본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일하는 모니터와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뿐이자 마키는 섬세한 손가락으로 턱을 감싼다. 아오키도 말없이 허리를 펴고 굳었던 몸을 푼다.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네요."
 "말 그대로 성실한 사람이군. 모두에게 상냥하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려나."
 "장밋빛일까요?"


 마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피곤했을 그를 이해했는지 아오키가 구석자리에 있는 소파에 담요를 펼친다.


 "저, 실장님. 피곤하실텐데 눈이라도 좀 붙이시겠어요? 우선 제가 1차적으로 돌려보고 이상이 있으면 깨워드리겠습니다."


 날카로워지는 눈매에 찔금거리면서도 할 말은 제대로 마친다. 한동안 아오키를 노려보던 마키는 늘어지는 눈꺼풀을 어쩔 수 없는지 신신당부하며 소파에 드러눕는다.


 "30분 뒤에 꼭 깨워. 혼자서 보지 말고! 둘 다 1시간만 쉴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마뜩찮은지 몇 번이고 아오키를 돌아보다가 금세 잠들어 고요하게 숨을 내쉰다. 가늘게 공간을 채우는 마키의 숨소리가 침묵하는 허공을 메운다. 소리에 색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 마키가 내뱉는 날숨은 백색일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붉은 색.


 아오키는 저도 모르게 마키에게 다가서는 본인을 힐난하면서도 바라보는 눈을 멈추지 않는다. 솜털이 일어날 듯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보송보송하고 혈색이 도는 복숭앗빛 뺨과,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속눈썹. 정지한 영상의 광입자들조차 숨죽여 모이게 만드는 길고 섬세한 속눈썹이, 붉게 숨을 틔워내는 입술이 못 견디게 애닯다. 가만 가만, 공기조차 거스르지 않게끔 손가락을 뻗어 살짝 벌어진 그 산호색 입술을 건드린다. 규칙적인 숨결이 맞닿은 아오키의 손가락 위로 작게 소용돌이를 그린다. 그 움직임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방비한 아이같은 동안에 결국 아오키는 손을 거두고 자리로 돌아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을 끌어안는 환영을 지워야 하는지.


 나는 누구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을 죽일 것이다. 당신이 품고 있는 그 비밀이 얼마나 크던간, 얼마나 중요하던간에 내가 당신의 뇌를 부숴버린다면, 뭉개버린다면, 당신은 평안히 잠들 수 있겠지. 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이다지도 따르고 아끼고-, 사랑하는 나는 누가 죽여줄까.


 -이튿날 '제9'에는 두 명의 용의자가 도착했다. 한 명은 츠키야마 카오루. 다른 한 명은 키타이치 코타로. 키타이치는 타나카의 직장 동료로 사망 전날 회식 자리에서 무의미한 시비를 걸었다고 영상에서 체크 된 인물이었다.


 연행된 키타이치는 당황한 모습으로 연신 본인이 무죄임을 주장했다. 물론 타나카에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지만 타나카에게 맞지는 않고 본인은 때리기만 했다고 한다. 오히려 원한이 있다면 타나카로, 본인은 고집을 부리고 때린 그 상황에 대해 다만 미안한 감정만 남아 있다고 진술하였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평을 종합해보았을 때 키타이치는 타나카에게  꽤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호세이 대학 출신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키타이치는 직장 동료와 트러블이 많았다. 그에 비해 사회성도 좋고 일처리도 빠른 타나카와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알고나서 키타이치는 걸핏하면 타나카의 험담을 하기 일쑤였고, 일에 있어서도 타나카에게 떠넘긴다거나 일부러 실수를 한 채 보내는 등의 유치한 일이 잦았다고 한다.


 "하. 정말 유치하네요."
 "유치하다는 것조차 모를 걸."


 선명하지 않은 경멸을 담고 내뱉었다. 그런 아오키를 흘끗 바라본 마키가 중얼거리면서 쥐고 있던 볼펜을 딱딱거린 뒤 오카베에게 서류를 인도받았다. 서류 안에는 타나카의 주변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눈썹을 찡그리면서 서류를 훑어보던 마키는 고개를 저으면서 츠키야마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츠키야마 카오루 씨?"
 "네, 맞습니다."
 "타나카 잇세이 씨의 가장 절친한 친구, 맞으십니까?"
 "-네."


 사진에서보다 조금 수척한 얼굴을 지닌 남자가 조용히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키가 큰 츠키야마는 조용한 분위기를 띤 사람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질문에도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츠키야마가 대답하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마키는 심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작스레 마키가 들어서자 당황한 우노를 눈짓으로 보낸 뒤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쳤다.


 "타나카 잇세이와는 어떻게 친해지셨습니까?"
 "잇세이는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였습니다. 처음 초등학교에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도 잇세이였습니다. 그 이후로 쭉 친하게 지내왔고,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잇세이가 대학에 갔을 때에는 지역까지 달라졌지만 그때에도 꾸준히 서로 연락하고 자주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담담하게 말을 잇던 츠키야마는 결국 말을 하다 말고 벅차 오르는 눈물에 이를 악문다. 방울 방울 샘솟은 눈물은 야위고 붉은 눈가를 지나 턱으로 뚝뚝 흘러내린다. 한동안 억눌린 오열을 흘려내던 츠키야마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상당히 적의에 찬 눈으로 마주 앉은 마키를 내려다 보았다.


 "당신들이 나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혹은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건 나라고 말하고 싶군요."
 "누구도 당신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착각하고 계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라사키 씨께서도 잘 증언해주셨거든요."


 무라사키의 이야기가 나오자 츠키야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면도도 하지 못해 꺼칠하게 오른 수염과 대조되는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마키는 사무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무라사키 씨께서는 굳이 이 '제9'에 전화를 해서 그 날 밤 당신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해주셨습니다. 20년지기 절친한 친구를 잃은 카오루 씨의 마음도 좀 헤아려달라고 하시면서. 좋은 약혼녀를 두셨군요. 타나카 씨가 사망하던 날 오전부터 쭉 같이 있으셨다고, 필요하면 영수증이라도 보내드리겠다고, 까지."


 말을 마친 마키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본인이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우노에게 다시 츠키야마를 넘겼다.


 그리고 며칠 후, '제9'의 사람들은 그의 약혼녀 무라사키 하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제9'에 직접 찾아왔다. 츠키야마 카오루가 남긴 유서를 들고서.


 "속이 시원한가요? 20년지기 친구를 잃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 자살로까지 밀어넣으면서, 마음이 편하시던가요?"


 밤색 머리카락이 온통 흐트러진 채, 눈가와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진 채 찾아와 울부짖는다. 피를 토해내는 듯한 오열에 아오키는 가슴에 매달린 무라사키를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타나카 잇세이의 죽음에 죄를 고백하며 자살해버린 츠키야마의 소식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20년 동안 친하게 지내왔지만 결국 나는 잇세이의 대등한 친구는 될 수 없다는 절망에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유서에 쓰여 있었다.


 "당신들을 저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결코-"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경비원들이 무라사키를 떼어내자 그녀는 절규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 뒷모습에 아오키가 씁쓸하게 재킷을 터는 모습을 보던 마키가 다가온다.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쳐 잡아주며 마키는 아오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츠야마에 들린 것은 맞지만 오후 11시 전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선불로 지불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츠키야마 씨는 오히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었습니다."


 아오키가 조심스레 마키에게 조사한 결과를 내밀자 마키는 곁눈으로 보고서를 보더니 아오키를 앉힌다. 햇볕에 잘 재운 청결한 향기가 마키의 옷자락에서 묻어나온다. 아오키가 앉자마자 마키는 손깍지를 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진지한 눈으로 그를 응시한다.


 "아마도, 타나카를 죽인 사람은 무라사키일 거야. 범행 날 타나카의 멘션 주변에서 무라사키와 닮은 여성을 보았다는 증언을 들었어. 이미 '진범'이 자살한 지금에서야 쓸모가 없어졌지만."
 "그럼, 도대체 왜-?"
 "무라사키가 타나카를 죽인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정이 얽힌 이야기이지. 츠키야마는 아마, 무라사키를 감싸기 위해 그런 일을 꾸몄을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타나카는 무라사키를 사랑했어. 아오키 너는 츠키야마가 타나카를 동경, 혹은 질투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정반대였을 거야. 타나카야말로 츠키야마에 대한 질투와 증오로 힘겨워했었지."


 사랑하는 여인조차 자신을 택하지 않았다. 누구나 본인과 잘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본인과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고요하고 침잠한 츠키야마를 고민의 토로 상대로 택하곤 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너무 쉽게 가지고도 나를 위로해주는 네가, 나는-.


 "저-, 실장님."
 "무슨 일이지?"
 "하아, 그, 저기-."


 우물쭈물대던 소가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마키를 연구실로 인도했다. 연구실에는 무라사키가 보낸 츠키야마의 유체가 놓여 있었다.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며 보내왔더군요. 그런 연유로는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너희들이 그리도 원하던 진실은 이 머릿속에 있을 거라며 악을 썼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마키는 싸늘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눈을 감은 츠키야마를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미 끝난 사건이니 더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무라사키가 인수하지 않는다면 가족에게 돌려보내."
 "곤란하게도 츠키야마는 고등학교 시절 양친을 잃고 그러면서 친척들과도 연이 끊겼다고 합니다. 유일한 가족은 그녀뿐입니다만."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시체 뒤치닥거리까지 해야 하게 된 거지? 똑바로 전하도록 해. 이미 이 사건은 츠키야마의 범행으로 종결난 것이라고.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고집부리다간 공범으로 감옥에 처넣어버린다고 말해."


 평소보다 한층 수위가 높은 마키의 독설에 우노가 당황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자 아오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오키는 대형 스크린이 펼쳐진 영사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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