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를, 가십니까?”

 “아까도 듣지 않았느냐. 제 침소로 가 금이나 연습하라고. 이런 일들은 빨리 해결할수록 좋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보다 저 기생은 결국 뭡니까? 저것도 독초를 잘못 사용한 것입니까?”

 

 

 제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준호는 단매를 짊어진 범신이 문을 열려다 말고 흘끗 저를 바라보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앞으로 다가서 문을 막는다.

 

 

 “설명해주십시오. 설명하시기 전에는 못 보내드립니다. 제게 저 여인은 사건과 관계된 중요한 용의자입니다.”

 “, . 형조의 망나니, 애기씨, 둘 다 어찌 생긴 별칭인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구나. 급하다, 아가. 비키거라.”

 

 

 범신은 굳이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은지 다른 편 손에 든 부채로 가로막고 선 준호의 팔을 툭툭 치지만 범신의 말마따나 그 별칭들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한 치도 흘러내리지 않는 명징한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굳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명 전에는 못 보내드립니다. 이리 두 눈 똑바로 뜨고 중요 관계자를 놓칠 순 없습니다.”

 “비키래두.”

 “안 됩니다.”

 

 

 실랑이가 몇 번 벌어지나 했더니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범신이었다. 제 어깨 위에서 축 늘어져 꼼짝도 못하는 단매를 곁눈으로 흘끗 보더니 느릿하게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다. 설명할 테니 이 집 기생 어미 좀 불러다오.”

 

 

 기생이라 할지언정 이 한양에서도 손에 꼽는 이 자명루의 기생들을 책임지는 기생 어멈이었다. 얼핏 보아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이 자명루의 주인, 채련은 금으로 새긴 연꽃과 새 등 화려한 비녀를 여러 개 꽂은 가채를 무겁게 틀어 올린 채로 나타나선 범신의 어깨에 엎어진 단매를 쳐다본다. 그 눈에 뜨악한 빛이 서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연륜이라 해야 할지, 금세 표정을 다잡고 먼저 모란 봉오리 모양을 새긴 은비녀를 뽑아내어 정신을 못 차리는 단매의 입술을 훑어낸다.

 

 

 “-거 의심이 심하구만. 독 같은 거 먹인 적 없수다.”

 

 

 짐짓 기분 나쁜 척 말하지만 그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풍겨온다. 채련 또한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범신을 향해 말을 잇는다.

 

 

 “용서하세요, 동지사 영감. 요새 워낙 이 아이를 찾는 분들이 많다 보니.”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범신의 직위까지 알고 있었다. 범신 역시 얕잡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예상했던 반응에 입가에 떠오르는 쓴웃음을 굳이 지우지는 않았다.

 

 

 “은에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무얼 잘 못 먹인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르신.”

 

 

 확인을 끝낸 은비녀를 제 고름에 얽어매며 범신을 쳐다본다. 여전히 웃음기가 서려 있지만 그 눈매 끝에 서릿발 같은 냉엄함은 마모되지 않은 날것이었다. 노려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호의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채련에게 범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나 또한 뭐라 설명할 말이 없구만. 가야금 솜씨 때문에 몇 마디 하였다고 제풀에 발끈하지 않겠나? 급작스레 홧병이 올라 쓰러졌다고 할 수밖에는. , 이 형조에서 나온 핏덩이 생각은 조금 다르지 싶다마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준호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지만 채련의 시선이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제게 답변을 요구하는 그 태도에 결국 준호는 목덜미를 조금 긁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채련과 눈을 맞춘다.

 

 

 “실은 사건 서간을 보고, 형조에서 나온 참일세. 나는 형조정랑으로, ,”

 

 

 제 이름을 소개하려던 순간 범신이 제 몸처럼 지니고 다니던 부채를 펼쳤다. 사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한 방지책이라고 여긴 준호는 말없는 제지에 보일 듯 말 듯 고갯짓을 하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 이 단매라는 기생과 관련된 여러 사건과 소문이 신경 쓰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실제로 보니 아무래도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여 이리 실례를 범하게 되었네.”

 “조사라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은 저희로써도 곤란합니다.”

 “, 아니, 그런데 정말 우리는 아, 무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야 거짓이지만, 그렇다고 콩 한 줌 무게쯤 되는 목걸이 하나 걸었다는 사실이 그리 크게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결국 점잔 빼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범신에게 동조하여 말하는 수밖에는.

 

 

 “믿기지 않겠지만 실로 정말일세. 저기 계신 동지사 어른께서 금 타는 실력에 몇 마디 말을 덧붙였더니 그세 바르르해서는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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