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논다고 하여도 기껏해야 자주 가던 주막에서 국밥에 막걸리 너 댓 병이 그만인 준호였다. 옆에 기생을 낀 채 호화로운 안주가 나오는 곳은 처음인지라 습관처럼 소매 안에 넣어둔 붉은 장미 묵주를 매만진다. 간만에 회식자리를 가진 탓에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저들끼리 얘기하는 선배 사이에는 끼지 못하고 연신 굳은 미소만 짓던 준호는 분내와 사향내를 풍기며 제게 교태를 부리는 기생에게서 짐짓 어색하게 팔을 빼며 곱게 화장한 여인들의 낯을 살폈다. 1년에 두 어 번 있는 형조의 회식 자리가 단매라는 기생이 있다는 자명루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던 만큼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단매를 찾을 숫기가 있을 리 없는 준호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제 소맷부리 속 묵주만 움켜잡고 있는 것이다. 이를 민감하게 알아챈 기생 중 하나가 살며시 준호의 팔짱을 끼며 생글 생글 눈치를 본다.

 

 

 “어머, -생기신 선비님이셔. 제가 오늘 함께 자리해도 괜찮겠사옵니까?”

 “, 아니, , -.”

 “허허, 역시 젊은이는 다를세. 벌써 아가씨 하나가 달겨들었구만. 잘생기고 볼 일이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육조에서 제일 예쁜 사내 아닌가.”

 

 

 장난처럼 이어지는 좌랑들과 참의의 말에 준호는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수그린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기생은 형조의 어른들에게 눈웃음을 쳤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새빨개지는 준호의 귓불에 여인은 생긋 웃으면서 콧소리 섞인 목소리를 낸다.

 

 

 “어머, 선비님. 부끄러움이 많으시다~ 괜찮사옵니다. 주령이라 하옵니다. 편히 놀다 가소서.”

 

 

 싱글 싱글 웃는 낯이 애교스럽다. 주령에게 끌려가다시피 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주령의 젓가락으로 옮겨지는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권하는 대로 마시면서 술이 조금 올라 용기가 났는지 준호는 슬쩍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본다.

 

 

 “, , 주령. , 혹시 단매, 라는 기생을 아는지?”

 

 

 썩 좋은 대화 주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매라는 말에 순간적이지만 단박에 주령의 눈썹이 위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기생인만큼 금세 익숙하게 표정을 풀면서 빈 술잔에 술을 채운다. 맑은 술이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준호는 제 손가락에 얽은 묵주를 그제야 깨닫는다.

 

 

 “아이 참, 선비님도,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 꺼내는 것이 아닌데. 이 주령, 속상하옵니다.”

 “, 아니, . 저기, 그게 아니라 형조에, 사건 서간이 와 있길래.”

 

 

 허둥지둥 말을 고치다 별 수 없이 채워진 잔을 비운다. 오히려 그것이 정답이었던지 아까보다 조금은 다정하고 심술궂어진 표정으로 주령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 그 항아 팔을 부러뜨린 것 때문에 그러시옵니까? 하긴, 저희도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사옵니다. 아니 무슨, 제 두 배나 되는 계집 팔을 단박에 부러뜨리다니요. 항아 고것도 높으신 분들이 이뻐한다 기고만장이어서 솔직히 속은 시원했지만요, 아무리 봐도 요새 단매 고년이 이상하다니까요.”

 

 

 훨씬 더 편해진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빈 술잔과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며 종알 종알 말을 이어나간다.

 

 

 “사실 단매 고게 썩 이쁜 얼굴은 아니거든요. 삐쩍 말라가지구, 말수도 없구요. 꼭 자기처럼 말 없는 분들께서 좀 찾나 싶더니 두 달 전쯤부턴가? 갑자기 저희 단골손님들 자리에 상도도 없이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새 고것한테 홀랑 빠져 버리셨다더라구요. 속상해 죽겠어요! 거기다 힘은 어찌나 센 지, 우리끼리 조금 제 흉을 봤다고 이렇게 손톱을 세우지 뭐예요? 아무리 분으로 찍어도 가려지지가 않아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맷부리로 거짓 눈물을 찍어내는 척 하면서 슬쩍 제 손등을 내민다. 과연 제 말마따나 하얗게 분칠한 그 손등 위에는 화장으로도 가리지 못한 흉터가 푹 패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작지 않은 상처에 의혹은 더해만 갔다. 단기간에 성격이 확 바뀌었다던가, 갑자기 힘이 세졌다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변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약초의 오남용과 관련된 듯한 느낌에 준호는 이 일만큼은 반드시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곱씹어본다.

 

 

 어젯밤 일을 되새김질하다가 결국 목덜미를 북북 긁어냈다. 햇빛을 보지 못해 하얀 목덜미에 붉은 손톱자국이 장미 덩굴처럼 피어났다가 조금씩 삭아간다. 머리통을 싸매 쥔 채 괴로워하는 준호를 보던 무심은 책상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간을 쌓아 올리면서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요거 오늘 안에 안 하시면 이번에야말로 참의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겝니다.”

 

 

 퍼뜩 정신을 차리다 말고 제 앞에 쌓인 서간 더미에 결국 울상이 되어버린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숙취는 머리를 울리지, 오늘 안에 정리해야 하는 사건 서간은 저렇게나 밀려있다. 거기다 어제 회식의 여파인지 늦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지 않아도 형조참의는 그야말로 심기불편 그 자체였다. 부지런히 서간을 나르며 어지러운 형조 안을 정리하던 무심조차 무거운 공기에 조심스럽게 혀를 차고는 몸을 사린다.

 

 

 “거 아직 덜 됐는감?”

 “, . 아닙니다, 영감님. , 하고 있습니다. 하하, , 사건이 많은 지라.”

 “에잉. 그거 하나 빨리 빨리 못하남? 그리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면 서간이 술술 쓰이기라도 하는지!”

 

 

 짜증서린 상사의 말에 준호는 허둥지둥 정신 줄을 잡고 작업에 골몰한다. 아직 신출내기에 불과한 준호에게 어차피 단매와 관련 있는 사건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워보였으므로, 먼저 제게 주어진 일과부터 해결한 뒤 찬찬히 확인해보자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낸 참이기도 했다.

 

 

 “아가, , 뭐에 신경을 쓰고 있더냐?”

 

 

 평소라면 참판 어른이 일어나자마자 집이나 주막으로 줄행랑을 쳐버렸을 준호였지만 아까 마음먹은 대로 조금이나마 그 사건을 더 알아보려 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접선으로 준호의 보드라운 뺨을 톡톡 친 범신은 준호가 펼쳐놓은 두루마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중이었다.

Posted by habanera_

2019. 12. 4. 23:10 일상

와 완결

와 씨발 돌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으로 중편 완결내봄

와 오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시발 망할 조급증 땜에 엔딩을 존나 예전에 써놓은 게 함정

그래서 그런지 생각 외로 해방감이 안 든다는 건 졸라 부들부들....

그런데 어쨌거나 발치에 떨어진 동백 꽃잎보다 작은 것이 완결 났습니다

천천히 올리는 걸로

그래서 검은사제들 2 언제 나와 시발 ㅠㅠㅠ언제까지 존버해야돼ㅠㅠㅠㅠㅠㅠㅠㅠ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미션 안내  (0) 2017.03.25
[감상] 가려진 시간  (0) 2016.11.22
보호글 비번  (0) 2016.09.22
Posted by habanera_

2019. 11. 3. 01:02

[기현얀달]기억상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아이처럼 엷게 반짝이던 동공이 수축하듯 금세 무저갱이 되어버렸다. 새까맣다 못해 바닥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그 묵색 홍채가, 흐트러졌음에도 여전히 단정한 선을 지닌 준호를 수묵화 안에 가두었다.

 

 

 “그리 궁금하다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려무나.”

 

 

 그제야 시선이 흩어졌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 사람의 언쟁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람 같은 온후함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묵직하게 공간을 채웠다. 문모는 준호의 시선이 그제서야 자기에게 닿은 것을 깨닫자 가볍게 목례하며 눈가에 웃음을 퍼뜨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문모 야고보라고 합니다.”

 “...최준호라고 합니다.”

 

 

 형조정랑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조선에서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들어온 천주교를, 유교의 근간을 흔드는 사이비 학문으로 도외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자들을 잡아 문초할 정도로 박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제가 따라 들어온 곳이 천주교의 신부 앞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준호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내심이 표정까지 좋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라 그린 듯 고운 눈썹은 거칠게도 찌푸려져 있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말문이 턱 막혔다. 누가 당신더러 절 용서해 달라 했던가. 세계가 새빨개지도록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에 준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쪽 눈에만 진하게 쌍꺼풀이 진 눈매가 파르르, 여윈 날갯짓으로 떨려왔다.

 

 

 “네 까짓 오랑캐가 감히! 그런 무례한 이야기를 들으려 따라 온 것이 아니다! 난 당장 나가겠소!”

 “용서해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단정하다. 자리에 앉은 문모는 제게 폭언하는 준호에게도 여전히 자애로운 분위기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준호, 형제님께서 어떤 고통을 가지고 계신지, 어떤 괴로움을 안고 계신지 사실 알 수 없습니다. 형제님 말마따나 피붙이들조차 모르시겠지요. 허나, 그 괴로움에 가득 찬 고통에도 단 한 줄기 빛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하느님이실 겁니다.”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그 하느님이 무엇이건대 조정의 녹을 먹는 호조정랑을 욕보이고, 나아가 그의 피붙이가 되는 참의까지 능멸하려 하는가? 그대가, 그리 말하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제멋대로 목소리가 떨려왔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용서라. 누가 누굴 용서하겠다는 말인지. 아니, 과연 용서 받을 수나 있는 일인지. 홀로 살아남겠노라 제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은 동생의 손을 아귀처럼 쳐냈다. 짖어대는 들개의 소리가 뜨거운 불이 되어 제 발을 붙잡을까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제 뒷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으며 또한, 오죽이나 증오스러웠을까.

 

 

 

 그 광경만 떠올리면 숨이 죄어들었다. 지옥불로 타들어가는 목구멍은 단 한 줌의 산소조차 삼키지 못하고 마르게 저를 익사시켰다.

 

 

 이를 악문 준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충혈된 눈은 그 단아한 뺨으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허락지 않았다.

투명한 물이 뚝, 하얀 바지 위로 떨어졌다.

 

 

 놀라 쳐다보니 야윈 문모의 볼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준호의 슬픔이 제 것인 양 문모는 아랫입술을 희게 질리도록 깨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손아귀에는 낯선 장미 모양의 장신구를 세상에 오직 하나 남은 동아줄인 것처럼 붙든 채, 숨을 죽여 오래 눈물을 흘렸다. 준호는 제 대신 울음 우는 문모에게서 차마 모질게 일어서지 못하고 입술만 짓씹었다.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문모에게 준호는 물론 범신 또한 말을 걸지 않았고, 드물게 숨 삼키는 소리만 고여 가는 그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형제님.”

 

 

 그리고는 손을 뻗어 당황한 준호의 손에 제가 들고 있던, 장미가 엮인 형태의 목걸이를 꼭 쥐어주었다. 준호는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을 한 장신구에 고개를 갸웃하며 설명을 구하기라도 하듯 문모와 시선을 마주쳤다. 눈물이 흘러 붉어진 눈매는 여전히 자애롭게도 준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냈다.

 

 

 “가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공허할 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마다 이 묵주를 쥐고 후련하게 고백이라도 해보십시오.”

 

 

 문득 그림자가 서렸다 싶더니 커다란 온기가 툭 제 목덜미 위를 덮어냈다.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범신이 준호의 어깨를 무심한 듯 익숙하게 쓰다듬은 탓이다.

 

 

 “핏덩아. 밥이라도 잘 먹고, 그렇지. 이 야고보 신부님이 해주신 말씀대로도 해보고.”

 

 

 범신과 문모 사이 어색하지 않은 눈인사가 지나간다.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모르는 준호를 흘끗 돌아보고는 문을 연다.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난 준호는 머뭇거리며 잠깐 시선을 문에 두었다가 문모에게 인사는 하지 않고 문을 나선다. 그 와중에도 손바닥으로 파고드는 묵주가 주는 감각을 선명하게 깨닫는다.

 

 

 “먼저 들어가 보마, 핏덩아. 치헌이에게 안부 전하고.”

 

 

 어느새 짙은 감람색 비단을 닮은 하늘 위에 달이 내린다. 허위허위 걸어가는 등이 쓸쓸하게 은빛으로 덧씌워진다. 제 눈 안에 휘어 감기는 그 뒷모습이 허망하고도 고독해, 준호는 심장이 저려오는 느낌에 다시금 손아귀에 장미의 묵주를 가시처럼 옭아맨다.

 

 

 들어오자마자 집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 안에 틀어박힌 준호는 간단한 수세 물을 부탁한 뒤 갓을 벗는다. 세조대를 풀고, 두루마기를 벗는 동안 준호는 멍하니 책상 위에 올려둔 붉은 묵주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다. 자신이 묵주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준호는 수세 물이 든 대야를 받아들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그를 만난 것이 잘못이었다. 발치에 떨어진 동백 꽃잎을 짓밟듯 그저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물론 알고 있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으로 매일을 삼켜나가는 제게 주문모라는 신부가 남긴 그 말이 파고들지 않을 리 없었다. 제 홍채에 붉게 상처를 남기는 장미들을 바라보던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묵주라 알려준 장신구를 집어 든다. 잘그락, 호박과 산호가 매달린 제 갓끈에서 나는 것보다 의미 없는 소리가 나는 그 묵주를 손가락 사이사이 얽어놓은 채 준호는 한참, 제가 입 밖에 차마 낼 수 없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불러댔다.

Posted by habanera_

 얼결에 고개를 푹 숙였다 들자 인자한 웃음이 먼저 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띤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앞서 걸어갔다. 크지는 않지만 잘 정리된 집과 정원이 그 주인 되는 자의 인품을 가늠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주 씨 성을 가진 선비라, 영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던 준호는 주 선비라 불린 남자의 앞에 앉아 범신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직한 신음성을 흘릴 수 있었다.

 

 

 “미쳤습니까?”

 “나 안 미쳤다. 소리 죽여라.”

 “당장 나가겠습니다.”

 “얘기는 듣고 나가도 안 늦다.”

 

 

 당당한 태도였다. 오히려 앞에 앉아 있던 주 선비가 준호가 보이는 반응에 범신에게 눈짓을 던졌지만 범신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소개하지. 이 앞에 앉아 계신 분은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시다. 죄 많은 어린 양들을 위하여 세례를 내려주시고, 미사를 집전하시지.”

 “그러니까 난 나가겠다구요, 이 개망나니야.”

 “베드로 형제님. 아직 이 분께서는 생각의 정리가 안 되신 듯 하니 다음에 부르는 것이-,”

 “-아직 죽은 여동생을 못 잊었다 하지 않았나. -, . 슬퍼서 눈물이 다 나오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찰 듯 날카로운 기세로 범신을 몰아붙이던 준호가 일순간 멈칫했다. 이를 알아차린 문모도 입을 다물고 범신과 준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납게 치뜬 눈으로 범신을 노려보던 준호가 악문 어금니로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 말씀하는 당신은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요.”

 “특별할 것도 없어, 핏덩이야. 너 또한, 나처럼.”

 

 

 특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나른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일순 준호를 꿰뚫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눈이. 아무것도 아닌 양 사적인 영역에 능글맞게도 들어와 놓고, 오히려 그 공간의 주인에게 이것저것 아는 척 해대는 모습이 정말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모든 비난과 경멸을 모아 그를 바라보아도 꿈쩍도 안하는 그 낯짝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그리 저를 몰아붙이시니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제가 열 살 되던 해, 제 여동생이 개에 물려 죽-, 사고였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냥? 그냥 죽은 게야? 정말로 그저 사고였나?”

 

 

 일순 눈에 핏발이 섰다. 씨발, 개자식. 상스러운 욕설이 떨리는 입 끝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분명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신은 여전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강건하고도 여유로운 표정 그대로였다.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준호에게 범신은 집요하게도 물음을 던졌다.

 

 

 “단순히 그저 개에 물려 죽었다는 이유로, 그렇게도 나를 노려보고 가슴 아파하는 게냐?”

 “당신이 뭘 알아.”

 “나는 아무것도 몰라. -허나, 너와, 그리고 단 한 분만은 알고 계시겠지.”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선이 굵고 뚜렷한 그 얼굴에 의외일 정도로 순진무구한 시선이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투명해진 동공에 준호는 잠깐 이를 악물었다가 던지듯 말을 뱉었다.

 

 

 “숙부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치헌이를 제외하고도 말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Posted by habanera_

 흔히들 알려져 있다시피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식물들을 총칭하여 약초라 하지만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라면 약초의 양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독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준호가 떠올린 것은 사람들을 홀리고 일시적으로 제 신체 기능을 높이는, 말하자면 독초의 가능성이 높은 약초였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한 자의 오남용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린 준호는 당장이라도 단매라는 그 기생을 찾아가야 하나 입술을 깨물다가 천천히 문간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 반가운 얼굴일세, 호조의 망나니.”

 “깜짝이야! -제게 망나니라고 부르실 만한 분이 아니시다 들었습니다.”

 

 

 느닷없는 만남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뻔뻔스레 눈가에 개구진 웃음을 함뿍 담는다. 익숙하게도 저를 불러 제끼는 그 호칭에 불퉁스럽게 대답한 준호는 여직 들고 있던 서간으로 제 입매를 가렸다. 본능적으로 저 치에게는 저의 어떤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음에, 용케도 그를 알아차린 범신은 들고 있던 접선(摺扇)을 소리 나게 접어두곤 일부러 가장 위에 있던 서간을 툭 건드렸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서간을 제대로 안아든 준호는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춘추관에는 일이 없답니까? 왜 멀쩡히 일하고 있는 저를 괴롭히십니까?”

 “네가 나를 망나니보다 더한 이라 부르기에 그 말에 어울리게끔 행하는데 무어, 불만이 있느냐?”

 

 

 말을 마치고는 낮게 웃음 짓는 입술로 기어이 서간 하나를 떨어뜨린다. 구겨지는 준호의 눈썹이 보이지도 않는지 한가롭게 펼쳐낸 부채로 바람을 만들어내던 범신은 서간을 줍지도 않고 저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준호와 눈을 마주했다. 불시로 마주친 범신의 눈은 의외로 깊고도 담백해 준호는 화를 내려던 것마저 잊고 잠깐 말을 잃었다.

 

 

 “준호야. -이적, 마음에 걸리느냐.”

 

 

 귀로 들려오는 말에 머리보다 먼저, 가슴이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심장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을 애써 거두어내며 준호는 억지로 시선을 피했다. 바닥없는 늪 같은 눈에 비친 자신이, 아직 개나리 꽃빛 아래 눈물로 얼룩진 그 어린 준호일까봐 사실은 두려웠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오늘, 나랑 같이 좀 가자꾸나.”

 “..., ? -?”

 

 

 잠깐 시선을 제 구름무늬 갓신에 두었다가 뜻밖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자 이미 무게감 있는 인영은 저만치 멀어져 간 뒤였다. 덩그러니 남겨진 준호는 짙게 그림자가 새겨졌던 눈을 몇 번 깜박거리곤 결국 신경질적으로 떨어진 서간을 툭 발로 찬 다음에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정랑. 송사 서간 여기 있소!”

 “한성부에서 온 사건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늘 안에 사간원으로 가야하는 자료는 여기로 부탁드립니다! 정랑! 어저께 부탁드린 건 다 완성되셨는지요?”

 “, 지금 드리겠습니다.”

 

 

 제아무리 숙부가 호조 참의라 한들 어쨌거나 이 형조에서 준호는 형조정랑이라는 직책에 알맞은 일을 해야 했고, 아직 형조의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준호에게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만큼 밀려있었다. 물론 단매라는 기생의 일이 신경 쓰였지만 오늘 안에 끝 마쳐야 할 일이 먼저였다. 일이 바쁜 만큼 제멋대로 저를 찾아왔다가 불쑥 떠나버린 범신이 얄밉기는 해도 말이다. 아무래도 단매의 일은 근무가 끝난 다음 개인적으로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중얼거리던 준호는 근무 시간이 끝나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밀린 서간을 밀어두고 책상 위에 뺨을 대었다. 이렇게 지친 몸으로는 집에 가는 것조차 큰일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날 때 다시 확인하는 게 낫다 싶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시간이 되었지?”

 

 

 놀란 듯 동그랗게 뜬 홍채 위로 얼핏 꼭두서니 빛깔을 머금은 햇살이 되튀었다. 햇빛에 얇게 저민 갈색으로 바래어버린 눈을 오래 바라보던 범신은 피식 웃으며 부채로 준호의 갓끈을 살짝 꿰어 끌어당겼다.

 

 

 “핏덩이야, 아까 놀라고도 지금도 또 놀라는 구나. 아까 어딜 좀 가자고 하지 않든?”

 “말씀만 하고 가셨으니 생각도 못했던 것이 당연한 것을요. 아니, 대체 동지사나 되시는 분께서 일은 안 한답니까?”

 “너를 형조의 망나니라 부르는데 나는 어찌 부르겠느냐. 춘추관의 개망나니가 어디 서간이나 들여다보겠느냐? 이쯤 되면 내게는 입도 떼지 않는 법이라.”

 

 

 헛헛하게 웃은 그대로 주르르 끌어가듯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아까 대충 매듭지은 일은 어차피 내일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보려고 생각했지만 복날의 개 마냥 이리 끌려 다니는 것은 영 신통치 않다. 해서, 준호는 볼멘소리를 해보기로 하였다.

 

 

 “아니 저는 뭐 일도 안 한답니까? 제 일, 아직 정리도 못하고 왔습니다만.”

 “서간을 저만치나 밀어두고 말이더냐?”

 

 

 얼핏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상황을 훤히 꿰뚫어보는 말투라 결국 준호는 불평조차 포기하고 제 갓끈에서 범신의 부채를 걷어낸 다음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리도 기어코 저를 데려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처음 만났던 동백 호수 이후로 호기심이 일기도 하는 터였다.

 

 

 “...? 아시는 분 댁이십니까?”

 “조용하거라.”

 

 

 항시 웃음을 잃지 않는 느긋한 표정이라 여겼는데, 하고 많은 집 중 한 채에 들어가는데 이리 긴장하는 것은 또 의외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느른한 눈을 하고 있지만 그 눈 깊은 안 쪽에서는 성마른 긴장이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곧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온 것은 단정하게 수염을 정리한 장년의 남성이었다. 남자는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여 문 안으로 들인 다음 느리지 않은 동작으로 문을 닫고 범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다른 형제님도 함께 오셨군요.”

 “제 오랜 친구의 조카놈입니다. 인사하거라. 주 선비님이시다.”

===

망할.... vpn 돌려야 겨우 되네요

준호 범신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12살로 돌립니다....

그래도 범죄인가 싶긴 하지만 뭐 뇌내 망상이니까여....

Posted by habanera_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8. 1. 8. 12:49

[천호지후] 얼음 향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흔히들 알려져 있다시피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식물들을 총칭하여 약초라 하지만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라면 약초의 양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독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준호가 떠올린 것은 사람들을 홀리고 일시적으로 제 신체 기능을 높이는, 말하자면 독초의 가능성이 높은 약초였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한 자의 오남용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린 준호는 당장이라도 단매라는 그 기생을 찾아가야 하나 입술을 깨물다가 천천히 문간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 반가운 얼굴일세, 호조의 망나니.”

 “깜짝이야! -제게 망나니라고 부르실 만한 분이 아니시다 들었습니다.”




 느닷없는 만남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뻔뻔스레 눈가에 개구진 웃음을 함뿍 담는다. 익숙하게도 저를 불러 제끼는 그 호칭에 불퉁스럽게 대답한 준호는 여직 들고 있던 서간으로 제 입매를 가렸다. 본능적으로 저 치에게는 저의 어떤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음에, 용케도 그를 알아차린 범신은 들고 있던 접선(摺扇)을 소리 나게 접어두곤 일부러 가장 위에 있던 서간을 툭 건드렸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서간을 제대로 안아든 준호는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춘추관에는 일이 없답니까? 왜 멀쩡히 일하고 있는 저를 괴롭히십니까?”

 “네가 나를 망나니보다 더한 이라 부르기에 그 말에 어울리게끔 행하는데 무어, 불만이 있느냐?”




 말을 마치고는 낮게 웃음 짓는 입술로 기어이 서간 하나를 떨어뜨린다. 구겨지는 준호의 눈썹이 보이지도 않는지 한가롭게 펼쳐낸 부채로 바람을 만들어내던 범신은 서간을 줍지도 않고 저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준호와 눈을 마주했다. 불시로 마주친 범신의 눈은 의외로 깊고도 담백해 준호는 화를 내려던 것마저 잊고 잠깐 말을 잃었다.




 “준호야. -이적, 마음에 걸리느냐.”




 귀로 들려오는 말에 머리보다 먼저, 가슴이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심장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을 애써 거두어내며 준호는 억지로 시선을 피했다. 바닥없는 늪 같은 눈에 비친 자신이, 아직 개나리 꽃빛 아래 눈물로 얼룩진 그 어린 준호일까봐 사실은 두려웠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오늘, 나랑 같이 좀 가자꾸나.”

 “..., ? -?”




 잠깐 시선을 제 구름무늬 갓신에 두었다가 뜻밖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자 이미 묵직한 인영은 저만치 멀어져 간 뒤였다. 덩그러니 남겨진 준호는 짙게 그림자가 새겨졌던 눈을 몇 번 깜박거리곤 결국 신경질적으로 떨어진 서간을 툭 발로 찬 다음에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정랑. 송사 서간 확인!”

 “한성부에서 온 사건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늘 안에 사간원으로 가야하는 서간은 여기로 부탁드립니다! 정랑! 어저께 부탁드린 서간은 다 완성되셨는지요?”

 “, 지금 드리겠습니다.”




 제아무리 아버지가 호조 참판이라 한들 어쨌거나 이 형조에서 준호는 형조정랑이라는 직책에 알맞은 일을 해야 했고, 아직 형조의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준호에게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만큼 밀려있었다. 물론 단매라는 기생의 일이 신경 쓰였지만 오늘 안에 끝 마쳐야 할 일이 먼저였다일이 바쁜 만큼 제멋대로 저를 찾아왔다가 불쑥 떠나버린 범신이 더 얄미워져 이를 간 것은 별개의 일이라. 아무래도 단매의 일은 근무가 끝난 다음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중얼거리던 준호는 근무 시간이 끝나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책상 위에 뺨을 대었다. 이렇게 지친 몸으로는 집에 가는 것조차 질색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날 때 다시 확인하는 게 낫다 싶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시간이 되었지?”




 놀란 듯 동그랗게 뜬 홍채 위로 얼핏 꼭두서니 빛깔을 머금은 햇살이 되튀었다. 햇빛에 얇게 저민 갈색으로 바래어버린 듯한 눈을 오래 바라보던 범신은 피식 웃으며 부채로 준호의 갓끈을 살짝 끌어당겼다.

Posted by habanera_
이전버튼 1 2 3 4 5 6 7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habanera_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