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를, 가십니까?”

 “아까도 듣지 않았느냐. 제 침소로 가 금이나 연습하라고. 이런 일들은 빨리 해결할수록 좋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보다 저 기생은 결국 뭡니까? 저것도 독초를 잘못 사용한 것입니까?”

 

 

 제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준호는 단매를 짊어진 범신이 문을 열려다 말고 흘끗 저를 바라보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앞으로 다가서 문을 막는다.

 

 

 “설명해주십시오. 설명하시기 전에는 못 보내드립니다. 제게 저 여인은 사건과 관계된 중요한 용의자입니다.”

 “, . 형조의 망나니, 애기씨, 둘 다 어찌 생긴 별칭인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구나. 급하다, 아가. 비키거라.”

 

 

 범신은 굳이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은지 다른 편 손에 든 부채로 가로막고 선 준호의 팔을 툭툭 치지만 범신의 말마따나 그 별칭들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한 치도 흘러내리지 않는 명징한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굳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명 전에는 못 보내드립니다. 이리 두 눈 똑바로 뜨고 중요 관계자를 놓칠 순 없습니다.”

 “비키래두.”

 “안 됩니다.”

 

 

 실랑이가 몇 번 벌어지나 했더니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범신이었다. 제 어깨 위에서 축 늘어져 꼼짝도 못하는 단매를 곁눈으로 흘끗 보더니 느릿하게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다. 설명할 테니 이 집 기생 어미 좀 불러다오.”

 

 

 기생이라 할지언정 이 한양에서도 손에 꼽는 이 자명루의 기생들을 책임지는 기생 어멈이었다. 얼핏 보아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이 자명루의 주인, 채련은 금으로 새긴 연꽃과 새 등 화려한 비녀를 여러 개 꽂은 가채를 무겁게 틀어 올린 채로 나타나선 범신의 어깨에 엎어진 단매를 쳐다본다. 그 눈에 뜨악한 빛이 서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연륜이라 해야 할지, 금세 표정을 다잡고 먼저 모란 봉오리 모양을 새긴 은비녀를 뽑아내어 정신을 못 차리는 단매의 입술을 훑어낸다.

 

 

 “-거 의심이 심하구만. 독 같은 거 먹인 적 없수다.”

 

 

 짐짓 기분 나쁜 척 말하지만 그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풍겨온다. 채련 또한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범신을 향해 말을 잇는다.

 

 

 “용서하세요, 동지사 영감. 요새 워낙 이 아이를 찾는 분들이 많다 보니.”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범신의 직위까지 알고 있었다. 범신 역시 얕잡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예상했던 반응에 입가에 떠오르는 쓴웃음을 굳이 지우지는 않았다.

 

 

 “은에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무얼 잘 못 먹인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르신.”

 

 

 확인을 끝낸 은비녀를 제 고름에 얽어매며 범신을 쳐다본다. 여전히 웃음기가 서려 있지만 그 눈매 끝에 서릿발 같은 냉엄함은 마모되지 않은 날것이었다. 노려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호의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채련에게 범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나 또한 뭐라 설명할 말이 없구만. 가야금 솜씨 때문에 몇 마디 하였다고 제풀에 발끈하지 않겠나? 급작스레 홧병이 올라 쓰러졌다고 할 수밖에는. , 이 형조에서 나온 핏덩이 생각은 조금 다르지 싶다마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준호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지만 채련의 시선이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제게 답변을 요구하는 그 태도에 결국 준호는 목덜미를 조금 긁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채련과 눈을 맞춘다.

 

 

 “실은 사건 서간을 보고, 형조에서 나온 참일세. 나는 형조정랑으로, ,”

 

 

 제 이름을 소개하려던 순간 범신이 제 몸처럼 지니고 다니던 부채를 펼쳤다. 사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한 방지책이라고 여긴 준호는 말없는 제지에 보일 듯 말 듯 고갯짓을 하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 이 단매라는 기생과 관련된 여러 사건과 소문이 신경 쓰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실제로 보니 아무래도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여 이리 실례를 범하게 되었네.”

 “조사라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은 저희로써도 곤란합니다.”

 “, 아니, 그런데 정말 우리는 아, 무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야 거짓이지만, 그렇다고 콩 한 줌 무게쯤 되는 목걸이 하나 걸었다는 사실이 그리 크게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결국 점잔 빼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범신에게 동조하여 말하는 수밖에는.

 

 

 “믿기지 않겠지만 실로 정말일세. 저기 계신 동지사 어른께서 금 타는 실력에 몇 마디 말을 덧붙였더니 그세 바르르해서는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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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기, 단매. 귀하신 두 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화려하게 퍼져 자수가 들어간 자색 치마 위에 얇게 은사를 먹인 듯한 반투명한 치마를 한 겹 더 덧두르고, 홍색과 감색이 섞인 좁은 반회장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단매는 들은 대로 그리 외모가 뛰어난 기생은 아니었다. 다만 주막에서 들었던 말에는 거짓이 섞여 있었는지, 곱게 눈웃음으로 휜 눈은 크지도 않을뿐더러 여느 사람들과 똑같은 홍채를 지니고 있었다. 얄쌍하여 보호 본능을 자극하게 하는 하얗고 몸집이 가는 기생. 조금 안심하여 낮게 숨을 쉰 준호는 슬쩍 범신의 눈치를 보았고, 범신 또한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나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매라 하였던가. 네 기명이 육조대로 건너 운종가에까지 자자하더구나. 어디 네 솜씨 한 번 들어나 보자꾸나.”

 

 

 들고 있던 가야금을 보며 말하자 단매는 다시 한 번 더 눈을 초승달로 만들더니 자색 치마를 정리해 자리를 잡는다 .

 

 

 “그리 칭찬해주시니 송구합니다. 곡은 제게 맡겨주시는 것인지요.”

 “그리해 보거라. 네 노래가 술맛을 돋우는지, 아니면 버리는지 확인이나 해보마.”

 

 

 그리고는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잔에 넘치도록 술을 붓는다. 부러 거친 말과 행동으로 망나니 행세를 잘하는 범신에게 저도 모르게 풋, 웃어버린 준호는 근본을 모를 악취에 콧잔등을 찡그리면서도 또한 술잔을 쥐었다. 범신의 무례한 태도에 잠깐 손을 거두려던 단매는 이내 생글 생글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시작한다.

 

 

 “, -, 동지사 어른,”

 “편하게 아저씨라 불러도 된다, 아가.”

 “-그럼 아저씨. 저 이가 특별히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디서 계속 냄새가 나질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지. 너도 느꼈느냐.”

 “. 저 아가씨가 들어온 이후인 것 같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냄새가. -혹여나 저 기생이 쓰는 독초 같은 것은 아닐지.”

 

 

 분명 단매가 들어올 때 향낭이라도 매었는지 아주 진하면서도 독한 향이 났고, 그에 섞여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악취도 겹쳐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도 저와 비슷하게 악취를 느꼈다는 것을 확인한 범신은 별안간 벽을 향해 마시던 술을 흩뿌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야금을 타던 단매가 손을 멈춘다.

 

 

 “그만두거라. 그리 비싼 술도 아니건만 네 금 타는 소리에 술 맛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고얀. 일어 나거라, 아가.”

 

 

 뒤엣 말은 준호를 향한 것으로 이미 저는 항시 들고 다니던 동백선을 손에 쥔 채 몸을 일으키고 있다. 여전히 가야금 줄을 놓지 않고서 안족을 향해 시선을 내꽂던 단매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뱉는다.

 

 

 “아무리 이년의 배움이 짧다 한들, 술맛을 버릴 정도는 아니라 사료되었습니다만.”

 “계집이 말이 많구나. 우리가 아니라 하면 아닌 것이지 무에 그리 말이 많느냐.”

 “허나 두어 가락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듣지 않은 걸로도 네 실력이 미천함을 알겠다. 어흠, 나가서 귀도 한 번 다시 청소해야겠구나.”

 

 

 그제야 고개를 든 단매에게 준호가 숨을 삼킨다. 쌍꺼풀이 없어 얇은 눈 안에 마치 사각형처럼 홍채가 가로로 벌어진다. 짐승을 연상시키는 눈에 준호가 움찔, 뒤로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범신이 씩 웃는다.

 

 

 “오라, 드디어 네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요망한 것아.”

 “말씀을 먼저 심하게 한 것이 뉘신데 그러시는지요.”

 

 

 손가락으로 가볍게 농현한 줄만으로 알았는데 팍, 하고, 겹겹이 꼬였던 선이 터져버린다. 저 가는 몸에서 어찌 그런 힘이 나올까 싶은 통에 범신은 오히려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다가선다.

 

 

 “네 실력이 그밖에 안 되는 것을 내 어찌 거짓을 말하랴. 오늘부터는 침소에서 나오지 말고 금이나 연습하거라.”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무심코 눈을 돌린 단매는 범신의 소맷자락을 보고, 정확히는 그 손에 감긴 묵주를 보고 몸을 떤다. 그 떨림에 담긴 것은 명백한 공포와 분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슬더미를 왜 저리 두려워하는지 알 턱이 없는 준호는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기류 속에서 잠깐 제 손목 속 묵주를 쥔다.

 

 

 “, 순순히 이리 오너라. 너 정도 충분히 묶을 실력이 되느니.”

 

 

 원래도 몸집이 작다 할 수는 없는 이였다. 그런 그가, 작정을 하고 다가서니 호롱불빛에 비친 그림자까지 겹쳐 위압감에 숨조차 막혀왔다. 박력에 밀려 꼼짝도 하지 못하던 단매가 이를 악물고 범신 앞에 버티고 선다. 긴박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항시 몸에 지니고는 있으나 정확히 어떠한 용도인 줄 몰랐던 그 묵주를 손에 꿴 채 준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 외람되지만 묶기에는 좀 짧지 않겠습니까.”

 

 

 방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듣자 저도 모르게 범신의 기운이 사그라진 찰나, 단매가 그 소맷자락 옆으로 몸을 틀어본다. 그러나 엉겁결에 묵주를 꿰어 든 준호의 손이 단매의 손목을 부여잡고, 단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가, 핏덩이인 줄 알았더니 용케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자연스레 준호의 손에서 묵주를 빼어내, 무릎을 꿇은 단매의 목에 걸어주며 빙긋 웃어 보인다. 그와는 정 반대로, 단매는 목에 묵주가 걸리자마자 마치 칼이라도 진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움직이지 못한다. 괴로워 보이는 숨소리에 준호가 눈썹을 찡그리고 범신을 쳐다보았지만 그 시선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단매를 번쩍 안아 제 한쪽 어깨에 걸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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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하시는 겁니까. 그거 다, 제가 정리해놔야 하는 건,”

 “이 사건은 노비가 앙심을 품고 제 주인을 내건 사건이구만. 노비에게, 허위로 사건을 만들었을 경우 경국대전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일러주거라. 금세 자백할 것이다.”

 “...?”

 “또한 이러한 사건은, 경신년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면 사건의 피의자와 직접 대질시켜서는 아니 된다 하셨으니, 필히 도와줄 다모가 필요할 걸세. 이날엔 아마 연지가 당번인 날일 테니, 일러놓도록 하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도 않았지만 척척, 사건을 정리하여 곁에 있던 무심에게 자연스럽게 넘긴다. 준호가 끙끙 싸매던 삼분지 일의 시간으로 반 이상 서간을 정리한 범신은 허리를 쭉 한 번 펴나 싶더니 그대로 접선을 준호의 턱으로 갖다 대어 눈을 맞춘다.

 

 

 “, 이제는 이 일 안 하는 동지사와 함께 갈 수 있겠느냐, 아가.”

 

 

 시간 맞춰 동시에 형조의 문턱을 넘은 두 사람은 행여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름을 날리는 기생일수록 부르기가 어렵다 하더니, 최근 단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조차 겨우 잡았다는 말을 하는 범신의 뺨에는 드물게 홍조가 올라있었다.

 

 

 “, . 민망하더구만.”

 “-아니, 가보아도 몇 십 번을 혼자 가보았을 것 같은 양반이 무슨 소리십니까.”

 “나를 그리 보았더냐.”

 

 

 걷다 말고 살짝 미소를 띤 채 준호를 돌아다본다. 당연스레 말을 이어나가던 준호는 저를 바라보는 범신에게 눈이 동그래져 걷는 것조차 잊고 빤히 쳐다본다. 모르긴 몰라도 주워듣는 도중에 선월이라는 기생과는 정을 통한 사이라고 이미 육조 내에서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기생집에 가는 것을 꺼려하다니.

 

 

 “허허, 그랬던 모양이구만.”

 “, 아니... , 선월, 이라는 기생을...”

 “네가 그를 알더냐?”

 

 

 그저 지나가듯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잇자 의외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잠깐 껄껄거리며 호탕한 웃음을 낸 범신은 고개를 여러 번 주억거렸다.

 

 

 “내 명나라 다녀오는 길에 주워온 아이다. 어린 아이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영영 조선으로 못 돌아올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에 데리고는 왔다만, 그 아이가 형조 내에서도 이름이 날 정도로 컸다는 말이지.”

 

 

 이쯤 되면 정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키워준 보호자로서의 마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저에게 이런 헛소문을 흘린 형조 사람들에게 남몰래 이를 갈며 준호는 어설프게 맞장구를 칠 수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선월에 대한 이야기로 긴장이 풀린 것인지, 자명루에 도달해서 범신은 연륜이 느껴지는 몸짓과 목소리로 자리를 안내 받았다.

 

 

 “이야, 이거. 적응 안 되는구만. 나 같은 사람한테는 그저 접때 갔던 주막이 최곤데 말이야.”

 

 

 낮은 목소리로 옆에 얼어붙어 앉은 준호에게 귓속말 같은 농담을 건네며 킬킬댄다. 나이로 보나 지위로 보나 이렇게 화려한 곳이 낯설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 말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매번 저를 데리고 갔던 곳이 본인이 말한 주막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준호는 범신을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호화찬란한 만찬도 만찬이었지만, 이제 나올 단매라는 기생이 진실로 법을 어긴 자인지 확인하려면 먼저 배를 채워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아가, 마음은 알겠다만 오늘은 무엇도 하지 말아야 헌다. 확인이 우선이다, 우선이야. 괜한 생사람 잡을라 걱정이 되는구나.”

 “누굴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로 아십니까.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입으로 들어간 맛나고 기름진 찬들의 맛이 도무지 느껴지질 않는다. 높으신 분들이 오신다 하여 꾸미느라 좀 늦는다 하는 급사의 말도 들어오지 않고, 준호는 전날 밤 책에서 보았던 다양한 약의 증상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다시금 곱씹었다. 확인만 된다면야 내일 아침에라도 곧장 형조에 아뢰어 단매의 방을 확인해보아야 할 터였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날카롭게 구는 준호에게 범신은 조금 눈살을 찌푸리나 싶더니 술잔을 홀로 따랐고, 그와 동시에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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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죽이는 건 나, 나여야지,

 -나의 어여쁜 독.

 

 귓가에 닿아오는 투명한 햇살 같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한없이 잔혹하고도 지독한 저주를 담은 언어들이었다. 뒤이은 사물들에게 슬픔을 빚진 목소리는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어렴풋한 자취를 남기며 공기 속으로 위태하게 흐려져 갔다. 느릿하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호우린은 엷다 못해 은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미로(明露).”

 

 

 체온보다 조금 높게 느껴지는 온기가 제 어깨를 가다듬어 호우린은 움찔, 커다란 눈을 들었다. 마주친 눈동자는 얼어붙은 북해보다 채도가 낮은 은회색. 제 머리카락과 견주었을 때에도 색이 옅은 긴 눈에 호우린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춘다. 이를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잠깐 시선을 멈춘 여인은 씁쓸한 미소를 야윈 뺨에 밀어내었다 거두며 호우린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미안, 일 보느라 바빴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신 것을요.”

 

 

 삼켜낸 기침 뒤로 나지막한 울림이 목 안에서 되튄다. 걱정스럽게 눈썹을 늘어뜨린 여인은 옆에 선 여사의 손에서 따뜻한 차를 빼앗듯 들어 호우린의 작은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춥지는 않아? 머리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고?”

 “아닙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세요, 세리(世理).”

 

 

 그러나 멈춰지지 않는 기침이 거세지며 어깨가 들썩거리고, 깎은 듯 단정하던 호우린의 이마가 괴로운 듯 좁혀지자 세리라 불린 여인은 가냘프고 여린 손 위에 있던 찻잔을 쳐내듯 내던지며 그 등을 끌어안는다. 종이 치듯 맑은 소리로 깨어진 찻잔 안에서 말간 붉은 색이 바닥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미로, 괜찮아.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야.”

 

 

 제 눈과는 달리 밤보다도 새카맣게 여울지는 머리카락이 호우린의 창백한 뺨으로 걸쳐진다. 처음 저를 만났을 때, 달빛보다 맑게 비추는 금발과 청안이라고 감탄하며 세리가 지어준 자()였다. 왕을 만난 기쁨에 어쩔 줄 모르고 그저 하염없이 울던 그 순간이, 지금은 떠올리기조차 힘든 과거처럼 느끼는 스스로에게 느릿한 혐오를 가지면서 호우린은 잠깐 눈을 감았다.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미로를 아프게 하지 않을게. 나를 믿고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나의 이슬아.”

 

 

 끝말은 울음에 가까웠다. 시선만으로 사람을 베어 죽일 듯 날카로운 눈매에, 약소한 지방 호족 출신으로 당당하게 봉산했던 그 호기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진 어깨였다.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마른 손을 뻗어 안아본 그 등은 의복 너머 척추가 느껴질 정도로 여위어, 호우린은 고개를 들어 세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세리, 밥을, 먹지 않아요?”

 “미로.”

 “먹어야 돼요. 그래야, 그래야 힘을 내서 일을 하죠.”

 

 

 울지는 않았지만 젖은 눈매였다. 쌍꺼풀이 없어 일견 온순해 보이지만 양 끝으로 길게 뻗은 눈매와 그 눈매를 촘촘히도 둘러싼 속눈썹은 회청색이 도는 눈동자 사이에 깊은 경계를 이루며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칼날을 닮아 위태로우면서도 예리한 눈매로 한동안 호우린을 바라보던 세리는 졌다는 듯 물기 없는 미소를 띤 채 몸을 일으켰다.

 

 

 “나의 미로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용기가 안 나네. 대신, 나와 같이 식사는 해주겠지?”

 

 

 궁을 나서자 싸늘하다 못해 베어낸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내쉬는 숨결조차 보석으로 만들어버리는 냉기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몸을 세리가 단단히 지탱해준다. 제가 지닌 색만큼이나 부서지기 쉬운 여린 기린을 보는 눈썹이 자애롭기 그지없다. 마른 입술 위를 거칠게 흩어 놓는 동풍을 억지로 밀어내며 호우린은 세리를 올려다본다.

 

 

 1365일 차디찬 기운이 가시질 않는 방극국에 어울린다는 말도 우습지만, 하얗고 신경질적인 턱 선은 백색으로 어리는 겨울의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그와는 다르게 짙은 묵색으로 허공을 수놓는 긴 머리카락과, 북극해를 닮아 차가운 청색을 담은 잿빛 눈까지, 말 그대로 세리는 동장군(冬將軍)을 사람으로 옮겨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한없이 강인하면서도 차가운 미로의 주상. 그녀를 볼 때면 언제부터인가 등에서부터 목덜미까지, 한 줄기 전율이 가없이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춥지, 미로? 미안해. 폭설이 내린 후주 지방에 지원을 보내느라 궁들을 많이 닫아 놓았거든. 조금만 참아줘, 금세 도착할 테니까.”

 

 

 그런 만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 안을 길쭉하게 벼혀내듯 밀어닥치는 기침을 애써 참았지만 호우린의 병은 분명 실도(失道)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불로불사에 가까운 호우린이 이리 괴로워하며 심신의 고통을 호소할 리 없었다. 그러나 호우린의 눈에 비친 세리, 즉 방극국의 왕은 여전히 백성을 위하고 있었으며, 호우린을 자애로 보살피며, 하늘의 뜻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호우린은 결국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제 어깨를 품어주는 세리에게 기대어 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상.”

 “-.”

 

 

 말없이 올려다보는 서늘한 시선에 일순 언어를 잊었다.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건만 불쑥 불쑥 밀어닥치는 저 겨울 색 안정에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여사 메이시는 할 말이 있으면 이어 말하라는 듯한 세리의 눈에서 도망치듯 눈을 내리깔며 들고 온 두루마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번엔 어디에서 올라온 상소지?”

 “복주입니다.”

 “, 어라? 정추산 옥천이 벌써 마를 시기던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사항이었다. 실정하고 있던 조정에서조차 유명세를 날리지 못하던 한낱 약소 지방 출신의 여장군이라고만 했다. 봉기조차 일어날 일 없는 작은 지방에서 소일거리 삼아 장군 놀이하는 것 아니냐는 조롱을 들을 정도의. 그러나 봉산하였을 때 자신만만한 모습도 놀라웠건만, 세리는 왕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현저한 능력을 보였다. 장군 출신인 만큼 문무관들의 면면과 이름, 특출난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각 지방의 주요 산물과 지역적 이점을 무서우리만큼 적확하게 이해하였고, 이는 곧 조정 대신들 뿐 아니라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만큼 호우린의 실도는 방극국이라는 나라 전체에 보이지 않는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한 번 확인부터 해보소서.”

 

 

 말로 거들 것도 없이 벌써 세리의 눈은 상소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최근 상소가 올라온 후주처럼 복주 또한 오랜 폭설로 중앙 조정에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일 터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용을 모두 확인한 세리는 직접 몸을 일으키더니 각 지역의 지원을 담당하는 하관 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무지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저렇게 성실하며 또한 유능한 주상이, 어째서 호우린의 실도를 일으켰는지. 조정대신들 각각의 능력과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어울리는 관으로 배치하였으며, 대계를 바라보는 눈을 지녀 지방마다 유능한 관리를 키우기 위한 여러 시설들도 이미 마련하여 기반을 잡아가고 있던 터였다. 냉혹한 추위에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방극국의 실정을 알고 기술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 산업을 생각해낸 것도 세리의 능력이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백성들과 관리들은 믿었을지 모르겠다. , 조만간, 세리의 능력을 하늘이 이해하여 호우린의 실도를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고.

 

 

 얇고 마른 세리의 붉은 입술에 노랫가락처럼 말이 피어나며 가는 호선을 그려냈다.

 

 

 “너를 죽이는 건, 나여야지.

 사랑스러운 당신아.”

 

 

 

 쓰고 있던 종이를 집어던지자 그 서슬에 청명산 벼루가 슬픈 소리를 맑게 내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잘 어울리는 비취색 화려한 옷 위로 먹물이 튀어 오르자 신경질적으로 잡아 뜯다가는 종내 아주 찢어버린다. 마른 몸에서 억지로 찢어발긴 비단 옷을 바라보며 얇고 가느다란 입술에 독살스러운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렇지, 너를 죽이는 건 나뿐이어야지. 나의 아름다운 이슬.

 

 

 후주를 지원하느라 궁을 닫았다는 것 또한 거짓말, 복주는 애초부터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없었다. 지금 이 방극국에서 세리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하나, 호우린 미로뿐이었으므로.

 

 

 유능하지 않느냐? 그건 아니었다. 성실하지 않은 것도 결코 아니었다. 다만 세리가 그 유능과 성실을 사용하는 곳이 오직 호우린의 실도 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한없이 다정하고 다감하며, 한시도 백성을 잊은 적 없는 세리는 모두 호우린에게 만들어준 환상에 불과했다. 기나긴 실정에 지쳐있었던 호우린을 돌아보게 하려면 세리는 유능한 주상이어야 했고, 세리는 그러한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호우린을 돌아보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세리는 조정과 방극국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고, 그곳에서부터가 실정(失政)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조정에 들어서 눈이 아닌 심장에 각인시켰던 호우린의 아름다운 모습을. 얇게 자아낸 금실 위에 눈이 얹힌 것이 아니라면, 금빛으로 빛나는 유리달이 운해 위로 내려앉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부드러운 은백색 금발과, 청정한 운해 아래의 호수를 닮아 자애롭게 미소 짓는 영롱한 비취색 눈. 부드러운 뺨과 청아한 목소리까지, 세리는 호우린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그 연심은 차츰 커지다 못해 세리가 왕이 되자 절정에 달해버렸다. 원래라면 약소 지방의 여장군으로 평생 호우린을 그리다 가끔 알현할 때에만 숨기는 것이 가능한, 그런 연심으로 스러져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든 저를 향해 웃어주며, 원한다면 제 곁에 붙잡아두는 것이 가능한 데다 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충정 또한 지닌 제 반려가 되어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부서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저의 기린을 볼 때면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었다. 아무리 삼키고 숨기려 해도 너를 바라보는 눈길에, 가끔 쓰다듬는 네 볼의 부드러움에, 걱정스레 건네는 말 두어 마디에도 붉은 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너는 알까. 제 아무리 방극국의 겨울이 모질고 무섭다 하더라도, 나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자애로운 네 모습 그 한 자락이 내 모든 신경을 끊어버리고 찢어버리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미로야, 네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운해 아래를 바라볼 때, 아니면 네 침실을 정리하는 시녀에게 나에게 보내는 미소와 다를 바 없는 웃음을 향기롭게 띄어 보낼 때마다 내 심장은 터져버렸다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윤회를 반복하다 못해 탈진한 내 심장은 아마 너를 향한 내 단심을 견디기 어려워할 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 미로야. 우리 함께 죽자. 태어나기를 함께 태어나지는 못했으니, 죽음만큼은 너와 내가 함께 해야지. 나의 반려야.

온 생애를 통틀어, 그 모든 바다와 우주를 찢어 보아도, 천 번의 윤회를 반복하고 만 번의 피안을 건넌다 해도,

 

 

 나에게는 오직 너뿐이다. 그저 너여야 한다, 사랑스러운 나의 독().

 나의 사랑스러운 독아.

--사담

십이국기는 중학생 시절부터 진짜진짜 좋아하는 소설인데

최근에 대국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기쁨의 오열을...ㅠㅠㅠㅠㅠ하며

지금은 없는 방극국의 왕과/기린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독이라는 테마가 좋아서 여기에 맞춘 여성끼리의 이야기를 쭉 써보고 싶어요 이건 그 스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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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네. 아주 돈이 넘치다 못해 썩어 나는구만? 자명루에까지 행차하시고 말일세. 그럼 이 술상은 자네가 사는 건가?”

 “예끼, 말도 안 되는 소리. 금쪽같은 마누라를 두고 어디를 가? 자네도 알다시피 내 마누라가 얼마나 바느질 솜씨가 좋아. 그래서 자명루에서 가끔 옷을 지어달라고 옷감을 보낸단 말이지.”

 “그래, 허긴, 제수씨 솜씨가 워낙에 좋아야 말이지. -, 그래서 자네가 제수씨가 만든 옷을 갖다 주었단 말이구먼?”

 “이제야 이야기가 좀 되네. 그렇지!”

 “? 너무 예뻐서 혼이 쏙, 빠지겠던가?”

 “예쁜 건 둘째 치고, 혼이 쏙, 빠지겠는 건 모를 일일세.”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술이나 한 잔 더 가져오란 말인가?”

 

 

 농담처럼 받아넘기고는 탁주 반 되를 더 시킨다. 그것이 정답이었던지 앞에 앉은 사내의 입가에 벌쭉한 미소가 걸린다.

 

 

 “눈이, 아무래도 이상했단 말임세.”

 

 

 술 마시는 손이 멎은 준호는 물론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발을 입가에 댄 범신의 눈매 또한 가늘어진다. 몸의 이상 상태를 알기 쉬운 설명이었다.

 

 

 “아니, 잠깐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도 흠칫, 여간내기 눈짓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뜻인가?”

 “, 그그, 눈이 말일세, , 쩌기, 얌생이 새끼 같기도 하고, 배암 새끼 같기도 한 것이,”

 “에이, 사람이 허언은. 어째 사람 눈이 그래 생긴단 말이야?”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 마주쳤는데 소름이 쏴아, 하니 돋는 것이, 요새 왜 그리 고 여편네가 인기인 줄 모르겠단 말일세. 거기다가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그런 처자가 마음에 드나?”

 “, . 높으신 어르신네들 마음을 누가 알겠어.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한테야 무섭다, 사납다, 허지만 또 모를 일 아닌가.”

 “허긴, 그렇긴 해. 아이쿠, 술 식겄네. 한 잔 합세.”

 

 

 소리 나게끔 사발을 부딪치더니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기들끼리야 별 생각 없이 주고받은 대화라지만 사건 서간을 읽었던 두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른 깨달음을 준 모양이었다. 빈 사발을 쥔 채 한동안 말이 없던 준호가 이마를 든다. 어느 한 곳 무너진 데 없이 맑고 투명한 눈이 연거푸 엎드린 심연과 마주한다.

 

 

 “저랑 자명루, 한 번 안 가실래요?”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가 있을 것이란 짐작처럼, 이윽고 신탁처럼 무겁게 사발을 소리도 없이 상 위로 내려놓는다.

 

 

 “내 형조로 너를 데리러 가마. 그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말거라, 핏덩이야.”

 “내가, 아무리 형조의 망나니라고 한들 동지사께 대겠습니까? 걱정 마시지요.”

 

 

 , 뱉듯 말을 잇고 빈 사발을 보며 슬쩍 입술을 핥는다.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린 범신은 꽤나 유쾌한 표정으로 다시 탁주 한 되를 주문한다.

 

 

 “아가, 너 이 일을 무에라 생각하느냐.”

 “아가라니, 소름끼칩니다. 그리 말하지 마십시오. 엄연히 준호라는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술이 올라 불콰해진 얼굴로 고운 눈썹을 찡그리나 싶더니 쌍꺼풀이 지지 않은 쪽 눈을 치뜬다. 도홧빛으로 붉어진 눈가에 어지러운 생각이 맴도는 양이었지만 범신은 말을 달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기다림에는 이골이 난 어떤 것처럼.

 

 

 “앞서 말했다시피 약초의 오남용에 관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 같지 않은 힘도 그렇고, 꼭 동물을 닮은 눈이라니, 저는 아무래도 의심이 갑니다.”

 “그러하냐.”

 

 

 한동안 말이 없다. 쿨렁대는 물소리를 들으니 사발 째 들이키는 술이다. 어쩐 일로 제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술만 마셔대는 걸 보아하니 호기심이 동한다. 멍한 시선의 끝을 따라가 보니 만난 지 몇 번 되지는 않았지만 항상 들고 다니는 동백문 접선이라 준호는 불쑥 입 꼬리에 말을 담는다.

 

 

 “동지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동백꽃처럼 어여쁜 아가씨라니, 마음에 걸리시나 봅니다.”

 

 

 농이라면 농이었지만, 그 한 마디에 저를 쳐다보는 시선은 등골이 싸하게 만든다. 마신 술이 단숨에 일깨워지는 듯 날카롭게 벼린 시선. 숨을 삼키게끔 만드는 그 홍채의 만남에 준호는 흠칫 어깨를 굳힌다.

 

 

 “아가, -핏덩이야. 너는 모를 테다.”

 

 

 굳게 다물린 입술에는 단 한 모금의 미소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준호에게 그 말을 꺼낸 것조차 후회하는 듯 몸을 일으킨 범신은 남겨진 준호에게 단호하게 등을 돌린 채 도포 자락을 펄럭인다.

 

 

 그래서인지 준호는 범신이 그 접선을 가지고 평소처럼 쌓인 송사 서간 더미를 무너뜨렸을 때 오히려 안도해버렸다. 마치 그렇게 헤어진 적이 없었던 마냥 느긋한 여유를 눈가에 띄운 채 파묻혀 있는 듯한 준호의 두루마리 서간들을 툭, , 지치지도 않고 건드린다.

 

 

 “아가, 이거 언제쯤 끝나느냐.”

 “-그러니까, 아가라 부르지 말라니까요. 아니, 저번에도 여쭈었지만 일을 하시기는 하십니까?”

 

 

 일부러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찾아온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눈매에 떠오른다. 준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숫제 자리를 잡아버린 범신은 제가 건드린 두루마리를 쭉 펴 눈으로 읽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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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여긴 또 어쩐 일이시랍니까, ? , 동지사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하루가 멀다 하고 형조로 오시다니요.”

 

 

 저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접선을 쳐내고 제가 보던 두루마리를 멀찍이 밀쳐둔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넘쳐나는 와중에 굳이 끝난 사건을 다시 끌어오는 제 성정이 상사들이 좋아할 만한 군상은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과연, 치헌이 핏줄이 맞기는 한가 보구나.”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준호의 섬세한 턱선과 눈을 맞추며 껄껄 웃어젖힌 범신은 기어이 걸상을 끌어 그 앞에 자리를 잡아 단매의 사건 기록을 읽어본다.

 

 

 “요상하긴 하구나. 같은 여자가 다만 한 손으로 여자의 팔뚝을 부러뜨리다니, 기이하고 기이하도다.”

 “-그렇긴 하죠? 영 신경이 쓰여서요. 아무래도 저는 약초나 독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범신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뺏으려 했던 준호였지만 제 짐작과 비슷한 발언을 하자 금세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범신을 쳐다본다. 제가 여러 번 놀려 먹기는 했으나 제 말마따나 이제야 약관을 겨우 지난 핏덩이였다. 제 나이처럼 맑게 투명한 시선에 낮게 헛기침을 뱉은 범신이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슬쩍 미소를 띠며 접어내린 접선을 소리가 나게 펼친다. 미색 화선지에 붉은 동백이 올라앉은 고급스러운 접선 너머 묵직한 홍채가 가라앉는다.

 

 

 “아가, 이 문제가 궁금하더냐?”

 

 

 

 “아니, 어째 한동안 안 보이시나 싶더니, 어찌하여 또 주막이랍니까? 제가 정말로 숙부님께 혼쭐이 나는 꼴을 보고 싶으시단 말입니까?”

 

 

 끌려온 제가 또 잘못이다. 그 날 제가 캐물을 때에는 영문 모를 미소만 날리나 싶더니 칼날처럼 발길이 뚝 끊겼다.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 너무한 것 아니냐고 불평하면서도 은근히 그의 연락을 기다리길 보름, 연일 이어지는 격무에 지친 준호가 귀가하는 길에 막무가내로 끌고 온 곳은 단매나 항아가 있는 금화루가 아닌, 허름한 주막이었다.

 

 

 “이놈아, 귀 안 먹었다. 우선 앉아라.”

 

 

 울컥해서 소리를 지른 준호였기에 시선을 돌린 뒤 금세 다시 자리로 돌아앉는다. 능청스럽게 주모에게 술 두 사발과 간단한 국밥을 주문한 범신은 준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막걸리 사발을 단박에 쭉 들이키더니 손등으로 짙은 입술을 슥 훑는다. 아무 것도 아닌 몸짓 하나에도 두터운 존재감과 연륜이 드러나 준호는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엉거주춤 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시큼털털한 땀 냄새에,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 때 묻은 앞치마를 두른 주모가 내던지듯 내려놓은 국밥은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를 진한 그리움과 친밀감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막걸리 사발을 쥐자 그제야 범신의 눈썹 한 쪽이 꿈틀거린다.

 

 

 “핏덩이 너, 술도 먹느냐?”

 “먹는다는 말은 안했지만, 안 먹는다는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

 

 

 끊어내듯 말을 하고 맹랑하게도 사발을 앞으로 쑥 민다. 그 서슬에 범신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나 싶더니 그릇이 철철 넘치도록 탁주를 들이붓는다.

 

 

 “예민한 것이 과연 형조의 애기씨라는 말을 들을 법도 하구나.”

 “예민하면, 안 됩니까?”

 

 

 기어이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준호를 유심히 바라본다.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범신에게 애써 눈을 피하며 한 사발을 다 들이마신 준호 또한 젖은 입술을 닦아낸다. 갓 피어난 꽃처럼 붉게 젖은 입술을 바라보다 툭, 한 마디 던져놓는다.

 

 

 “아가, 너 월경 하느냐?”

 “, 무스...!?”

 

 뱉어내려던 막걸리를 겨우 삼키고 눈을 크게 뜬다. 당황한 것이 빤한 준호를 바라보며 접선으로 입가를 가리고 이죽거리는 눈가에 준호는 결국 어깨에 힘을 뺀다. 아무 소리도 안 한 양 그새 두 개의 사발에 막걸리를 채워놓고 제게 잔을 들어보이자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내었지만 이내 말없이 사발을 부딪친다. 사발끼리 부딪치는 소리 너머로 땀 냄새 들큰한 농민들의 대화 소리도 들려왔다.

 

 

 “봤어?”

 “이 사람은, 뭘 봤느냐 물어도 안 보고 다짜고짜 말부터 하는 이 버릇을 좀, 고쳐놔야 해. 그래, 봤다, 이 사람아.”

 “아니 글쎄, 미안함세. 그런데 말이야, 진짜 봤느냐는 말이지.”

 “그래 무얼 말인가. 이제는 좀 말이나 하게. 들어나 봅세.”

 

 

 듣기만 해도 우스운 대화에 준호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걸린다. 대대로 지체 높은 양반 집 자제라지만 숙부인 치헌은 신분제의 모순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그를 전복시킬 의도도, 생각도 없었지만 그 미묘한 기류는 준호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덕분에라고 해야 할지, 준호 또한 형조의 정랑이라는 직책까지 올라 있었지만 형조의 노비인 무심과도 친하게 지낼 만큼 허물이 없었다. 모두가 저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노골적이라 생각될 만큼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상민들의 대화가 즐겁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자명루 단매말일세.”

 

 

 준호의 손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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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논다고 하여도 기껏해야 자주 가던 주막에서 국밥에 막걸리 너 댓 병이 그만인 준호였다. 옆에 기생을 낀 채 호화로운 안주가 나오는 곳은 처음인지라 습관처럼 소매 안에 넣어둔 붉은 장미 묵주를 매만진다. 간만에 회식자리를 가진 탓에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저들끼리 얘기하는 선배 사이에는 끼지 못하고 연신 굳은 미소만 짓던 준호는 분내와 사향내를 풍기며 제게 교태를 부리는 기생에게서 짐짓 어색하게 팔을 빼며 곱게 화장한 여인들의 낯을 살폈다. 1년에 두 어 번 있는 형조의 회식 자리가 단매라는 기생이 있다는 자명루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던 만큼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단매를 찾을 숫기가 있을 리 없는 준호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제 소맷부리 속 묵주만 움켜잡고 있는 것이다. 이를 민감하게 알아챈 기생 중 하나가 살며시 준호의 팔짱을 끼며 생글 생글 눈치를 본다.

 

 

 “어머, -생기신 선비님이셔. 제가 오늘 함께 자리해도 괜찮겠사옵니까?”

 “, 아니, , -.”

 “허허, 역시 젊은이는 다를세. 벌써 아가씨 하나가 달겨들었구만. 잘생기고 볼 일이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육조에서 제일 예쁜 사내 아닌가.”

 

 

 장난처럼 이어지는 좌랑들과 참의의 말에 준호는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수그린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기생은 형조의 어른들에게 눈웃음을 쳤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새빨개지는 준호의 귓불에 여인은 생긋 웃으면서 콧소리 섞인 목소리를 낸다.

 

 

 “어머, 선비님. 부끄러움이 많으시다~ 괜찮사옵니다. 주령이라 하옵니다. 편히 놀다 가소서.”

 

 

 싱글 싱글 웃는 낯이 애교스럽다. 주령에게 끌려가다시피 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주령의 젓가락으로 옮겨지는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권하는 대로 마시면서 술이 조금 올라 용기가 났는지 준호는 슬쩍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본다.

 

 

 “, , 주령. , 혹시 단매, 라는 기생을 아는지?”

 

 

 썩 좋은 대화 주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매라는 말에 순간적이지만 단박에 주령의 눈썹이 위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기생인만큼 금세 익숙하게 표정을 풀면서 빈 술잔에 술을 채운다. 맑은 술이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준호는 제 손가락에 얽은 묵주를 그제야 깨닫는다.

 

 

 “아이 참, 선비님도,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 꺼내는 것이 아닌데. 이 주령, 속상하옵니다.”

 “, 아니, . 저기, 그게 아니라 형조에, 사건 서간이 와 있길래.”

 

 

 허둥지둥 말을 고치다 별 수 없이 채워진 잔을 비운다. 오히려 그것이 정답이었던지 아까보다 조금은 다정하고 심술궂어진 표정으로 주령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 그 항아 팔을 부러뜨린 것 때문에 그러시옵니까? 하긴, 저희도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사옵니다. 아니 무슨, 제 두 배나 되는 계집 팔을 단박에 부러뜨리다니요. 항아 고것도 높으신 분들이 이뻐한다 기고만장이어서 솔직히 속은 시원했지만요, 아무리 봐도 요새 단매 고년이 이상하다니까요.”

 

 

 훨씬 더 편해진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빈 술잔과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며 종알 종알 말을 이어나간다.

 

 

 “사실 단매 고게 썩 이쁜 얼굴은 아니거든요. 삐쩍 말라가지구, 말수도 없구요. 꼭 자기처럼 말 없는 분들께서 좀 찾나 싶더니 두 달 전쯤부턴가? 갑자기 저희 단골손님들 자리에 상도도 없이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새 고것한테 홀랑 빠져 버리셨다더라구요. 속상해 죽겠어요! 거기다 힘은 어찌나 센 지, 우리끼리 조금 제 흉을 봤다고 이렇게 손톱을 세우지 뭐예요? 아무리 분으로 찍어도 가려지지가 않아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맷부리로 거짓 눈물을 찍어내는 척 하면서 슬쩍 제 손등을 내민다. 과연 제 말마따나 하얗게 분칠한 그 손등 위에는 화장으로도 가리지 못한 흉터가 푹 패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작지 않은 상처에 의혹은 더해만 갔다. 단기간에 성격이 확 바뀌었다던가, 갑자기 힘이 세졌다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변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약초의 오남용과 관련된 듯한 느낌에 준호는 이 일만큼은 반드시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곱씹어본다.

 

 

 어젯밤 일을 되새김질하다가 결국 목덜미를 북북 긁어냈다. 햇빛을 보지 못해 하얀 목덜미에 붉은 손톱자국이 장미 덩굴처럼 피어났다가 조금씩 삭아간다. 머리통을 싸매 쥔 채 괴로워하는 준호를 보던 무심은 책상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간을 쌓아 올리면서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요거 오늘 안에 안 하시면 이번에야말로 참의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겝니다.”

 

 

 퍼뜩 정신을 차리다 말고 제 앞에 쌓인 서간 더미에 결국 울상이 되어버린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숙취는 머리를 울리지, 오늘 안에 정리해야 하는 사건 서간은 저렇게나 밀려있다. 거기다 어제 회식의 여파인지 늦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지 않아도 형조참의는 그야말로 심기불편 그 자체였다. 부지런히 서간을 나르며 어지러운 형조 안을 정리하던 무심조차 무거운 공기에 조심스럽게 혀를 차고는 몸을 사린다.

 

 

 “거 아직 덜 됐는감?”

 “, . 아닙니다, 영감님. , 하고 있습니다. 하하, , 사건이 많은 지라.”

 “에잉. 그거 하나 빨리 빨리 못하남? 그리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면 서간이 술술 쓰이기라도 하는지!”

 

 

 짜증서린 상사의 말에 준호는 허둥지둥 정신 줄을 잡고 작업에 골몰한다. 아직 신출내기에 불과한 준호에게 어차피 단매와 관련 있는 사건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워보였으므로, 먼저 제게 주어진 일과부터 해결한 뒤 찬찬히 확인해보자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낸 참이기도 했다.

 

 

 “아가, , 뭐에 신경을 쓰고 있더냐?”

 

 

 평소라면 참판 어른이 일어나자마자 집이나 주막으로 줄행랑을 쳐버렸을 준호였지만 아까 마음먹은 대로 조금이나마 그 사건을 더 알아보려 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접선으로 준호의 보드라운 뺨을 톡톡 친 범신은 준호가 펼쳐놓은 두루마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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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처럼 엷게 반짝이던 동공이 수축하듯 금세 무저갱이 되어버렸다. 새까맣다 못해 바닥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그 묵색 홍채가, 흐트러졌음에도 여전히 단정한 선을 지닌 준호를 수묵화 안에 가두었다.

 

 

 “그리 궁금하다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려무나.”

 

 

 그제야 시선이 흩어졌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 사람의 언쟁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람 같은 온후함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묵직하게 공간을 채웠다. 문모는 준호의 시선이 그제서야 자기에게 닿은 것을 깨닫자 가볍게 목례하며 눈가에 웃음을 퍼뜨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문모 야고보라고 합니다.”

 “...최준호라고 합니다.”

 

 

 형조정랑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조선에서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들어온 천주교를, 유교의 근간을 흔드는 사이비 학문으로 도외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자들을 잡아 문초할 정도로 박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제가 따라 들어온 곳이 천주교의 신부 앞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준호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내심이 표정까지 좋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라 그린 듯 고운 눈썹은 거칠게도 찌푸려져 있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말문이 턱 막혔다. 누가 당신더러 절 용서해 달라 했던가. 세계가 새빨개지도록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에 준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쪽 눈에만 진하게 쌍꺼풀이 진 눈매가 파르르, 여윈 날갯짓으로 떨려왔다.

 

 

 “네 까짓 오랑캐가 감히! 그런 무례한 이야기를 들으려 따라 온 것이 아니다! 난 당장 나가겠소!”

 “용서해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단정하다. 자리에 앉은 문모는 제게 폭언하는 준호에게도 여전히 자애로운 분위기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준호, 형제님께서 어떤 고통을 가지고 계신지, 어떤 괴로움을 안고 계신지 사실 알 수 없습니다. 형제님 말마따나 피붙이들조차 모르시겠지요. 허나, 그 괴로움에 가득 찬 고통에도 단 한 줄기 빛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하느님이실 겁니다.”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그 하느님이 무엇이건대 조정의 녹을 먹는 호조정랑을 욕보이고, 나아가 그의 피붙이가 되는 참의까지 능멸하려 하는가? 그대가, 그리 말하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제멋대로 목소리가 떨려왔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용서라. 누가 누굴 용서하겠다는 말인지. 아니, 과연 용서 받을 수나 있는 일인지. 홀로 살아남겠노라 제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은 동생의 손을 아귀처럼 쳐냈다. 짖어대는 들개의 소리가 뜨거운 불이 되어 제 발을 붙잡을까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제 뒷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으며 또한, 오죽이나 증오스러웠을까.

 

 

 

 그 광경만 떠올리면 숨이 죄어들었다. 지옥불로 타들어가는 목구멍은 단 한 줌의 산소조차 삼키지 못하고 마르게 저를 익사시켰다.

 

 

 이를 악문 준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충혈된 눈은 그 단아한 뺨으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허락지 않았다.

투명한 물이 뚝, 하얀 바지 위로 떨어졌다.

 

 

 놀라 쳐다보니 야윈 문모의 볼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준호의 슬픔이 제 것인 양 문모는 아랫입술을 희게 질리도록 깨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손아귀에는 낯선 장미 모양의 장신구를 세상에 오직 하나 남은 동아줄인 것처럼 붙든 채, 숨을 죽여 오래 눈물을 흘렸다. 준호는 제 대신 울음 우는 문모에게서 차마 모질게 일어서지 못하고 입술만 짓씹었다.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문모에게 준호는 물론 범신 또한 말을 걸지 않았고, 드물게 숨 삼키는 소리만 고여 가는 그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형제님.”

 

 

 그리고는 손을 뻗어 당황한 준호의 손에 제가 들고 있던, 장미가 엮인 형태의 목걸이를 꼭 쥐어주었다. 준호는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을 한 장신구에 고개를 갸웃하며 설명을 구하기라도 하듯 문모와 시선을 마주쳤다. 눈물이 흘러 붉어진 눈매는 여전히 자애롭게도 준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냈다.

 

 

 “가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공허할 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마다 이 묵주를 쥐고 후련하게 고백이라도 해보십시오.”

 

 

 문득 그림자가 서렸다 싶더니 커다란 온기가 툭 제 목덜미 위를 덮어냈다.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범신이 준호의 어깨를 무심한 듯 익숙하게 쓰다듬은 탓이다.

 

 

 “핏덩아. 밥이라도 잘 먹고, 그렇지. 이 야고보 신부님이 해주신 말씀대로도 해보고.”

 

 

 범신과 문모 사이 어색하지 않은 눈인사가 지나간다.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모르는 준호를 흘끗 돌아보고는 문을 연다.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난 준호는 머뭇거리며 잠깐 시선을 문에 두었다가 문모에게 인사는 하지 않고 문을 나선다. 그 와중에도 손바닥으로 파고드는 묵주가 주는 감각을 선명하게 깨닫는다.

 

 

 “먼저 들어가 보마, 핏덩아. 치헌이에게 안부 전하고.”

 

 

 어느새 짙은 감람색 비단을 닮은 하늘 위에 달이 내린다. 허위허위 걸어가는 등이 쓸쓸하게 은빛으로 덧씌워진다. 제 눈 안에 휘어 감기는 그 뒷모습이 허망하고도 고독해, 준호는 심장이 저려오는 느낌에 다시금 손아귀에 장미의 묵주를 가시처럼 옭아맨다.

 

 

 들어오자마자 집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 안에 틀어박힌 준호는 간단한 수세 물을 부탁한 뒤 갓을 벗는다. 세조대를 풀고, 두루마기를 벗는 동안 준호는 멍하니 책상 위에 올려둔 붉은 묵주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다. 자신이 묵주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준호는 수세 물이 든 대야를 받아들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그를 만난 것이 잘못이었다. 발치에 떨어진 동백 꽃잎을 짓밟듯 그저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물론 알고 있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으로 매일을 삼켜나가는 제게 주문모라는 신부가 남긴 그 말이 파고들지 않을 리 없었다. 제 홍채에 붉게 상처를 남기는 장미들을 바라보던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묵주라 알려준 장신구를 집어 든다. 잘그락, 호박과 산호가 매달린 제 갓끈에서 나는 것보다 의미 없는 소리가 나는 그 묵주를 손가락 사이사이 얽어놓은 채 준호는 한참, 제가 입 밖에 차마 낼 수 없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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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고개를 푹 숙였다 들자 인자한 웃음이 먼저 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띤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앞서 걸어갔다. 크지는 않지만 잘 정리된 집과 정원이 그 주인 되는 자의 인품을 가늠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주 씨 성을 가진 선비라, 영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던 준호는 주 선비라 불린 남자의 앞에 앉아 범신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직한 신음성을 흘릴 수 있었다.

 

 

 “미쳤습니까?”

 “나 안 미쳤다. 소리 죽여라.”

 “당장 나가겠습니다.”

 “얘기는 듣고 나가도 안 늦다.”

 

 

 당당한 태도였다. 오히려 앞에 앉아 있던 주 선비가 준호가 보이는 반응에 범신에게 눈짓을 던졌지만 범신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소개하지. 이 앞에 앉아 계신 분은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시다. 죄 많은 어린 양들을 위하여 세례를 내려주시고, 미사를 집전하시지.”

 “그러니까 난 나가겠다구요, 이 개망나니야.”

 “베드로 형제님. 아직 이 분께서는 생각의 정리가 안 되신 듯 하니 다음에 부르는 것이-,”

 “-아직 죽은 여동생을 못 잊었다 하지 않았나. -, . 슬퍼서 눈물이 다 나오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찰 듯 날카로운 기세로 범신을 몰아붙이던 준호가 일순간 멈칫했다. 이를 알아차린 문모도 입을 다물고 범신과 준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납게 치뜬 눈으로 범신을 노려보던 준호가 악문 어금니로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 말씀하는 당신은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요.”

 “특별할 것도 없어, 핏덩이야. 너 또한, 나처럼.”

 

 

 특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나른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일순 준호를 꿰뚫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눈이. 아무것도 아닌 양 사적인 영역에 능글맞게도 들어와 놓고, 오히려 그 공간의 주인에게 이것저것 아는 척 해대는 모습이 정말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모든 비난과 경멸을 모아 그를 바라보아도 꿈쩍도 안하는 그 낯짝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그리 저를 몰아붙이시니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제가 열 살 되던 해, 제 여동생이 개에 물려 죽-, 사고였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냥? 그냥 죽은 게야? 정말로 그저 사고였나?”

 

 

 일순 눈에 핏발이 섰다. 씨발, 개자식. 상스러운 욕설이 떨리는 입 끝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분명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신은 여전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강건하고도 여유로운 표정 그대로였다.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준호에게 범신은 집요하게도 물음을 던졌다.

 

 

 “단순히 그저 개에 물려 죽었다는 이유로, 그렇게도 나를 노려보고 가슴 아파하는 게냐?”

 “당신이 뭘 알아.”

 “나는 아무것도 몰라. -허나, 너와, 그리고 단 한 분만은 알고 계시겠지.”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선이 굵고 뚜렷한 그 얼굴에 의외일 정도로 순진무구한 시선이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투명해진 동공에 준호는 잠깐 이를 악물었다가 던지듯 말을 뱉었다.

 

 

 “숙부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치헌이를 제외하고도 말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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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알려져 있다시피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식물들을 총칭하여 약초라 하지만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라면 약초의 양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독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준호가 떠올린 것은 사람들을 홀리고 일시적으로 제 신체 기능을 높이는, 말하자면 독초의 가능성이 높은 약초였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한 자의 오남용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린 준호는 당장이라도 단매라는 그 기생을 찾아가야 하나 입술을 깨물다가 천천히 문간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 반가운 얼굴일세, 호조의 망나니.”

 “깜짝이야! -제게 망나니라고 부르실 만한 분이 아니시다 들었습니다.”

 

 

 느닷없는 만남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뻔뻔스레 눈가에 개구진 웃음을 함뿍 담는다. 익숙하게도 저를 불러 제끼는 그 호칭에 불퉁스럽게 대답한 준호는 여직 들고 있던 서간으로 제 입매를 가렸다. 본능적으로 저 치에게는 저의 어떤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음에, 용케도 그를 알아차린 범신은 들고 있던 접선(摺扇)을 소리 나게 접어두곤 일부러 가장 위에 있던 서간을 툭 건드렸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서간을 제대로 안아든 준호는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춘추관에는 일이 없답니까? 왜 멀쩡히 일하고 있는 저를 괴롭히십니까?”

 “네가 나를 망나니보다 더한 이라 부르기에 그 말에 어울리게끔 행하는데 무어, 불만이 있느냐?”

 

 

 말을 마치고는 낮게 웃음 짓는 입술로 기어이 서간 하나를 떨어뜨린다. 구겨지는 준호의 눈썹이 보이지도 않는지 한가롭게 펼쳐낸 부채로 바람을 만들어내던 범신은 서간을 줍지도 않고 저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준호와 눈을 마주했다. 불시로 마주친 범신의 눈은 의외로 깊고도 담백해 준호는 화를 내려던 것마저 잊고 잠깐 말을 잃었다.

 

 

 “준호야. -이적, 마음에 걸리느냐.”

 

 

 귀로 들려오는 말에 머리보다 먼저, 가슴이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심장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을 애써 거두어내며 준호는 억지로 시선을 피했다. 바닥없는 늪 같은 눈에 비친 자신이, 아직 개나리 꽃빛 아래 눈물로 얼룩진 그 어린 준호일까봐 사실은 두려웠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오늘, 나랑 같이 좀 가자꾸나.”

 “..., ? -?”

 

 

 잠깐 시선을 제 구름무늬 갓신에 두었다가 뜻밖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자 이미 무게감 있는 인영은 저만치 멀어져 간 뒤였다. 덩그러니 남겨진 준호는 짙게 그림자가 새겨졌던 눈을 몇 번 깜박거리곤 결국 신경질적으로 떨어진 서간을 툭 발로 찬 다음에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정랑. 송사 서간 여기 있소!”

 “한성부에서 온 사건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늘 안에 사간원으로 가야하는 자료는 여기로 부탁드립니다! 정랑! 어저께 부탁드린 건 다 완성되셨는지요?”

 “, 지금 드리겠습니다.”

 

 

 제아무리 숙부가 호조 참의라 한들 어쨌거나 이 형조에서 준호는 형조정랑이라는 직책에 알맞은 일을 해야 했고, 아직 형조의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준호에게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만큼 밀려있었다. 물론 단매라는 기생의 일이 신경 쓰였지만 오늘 안에 끝 마쳐야 할 일이 먼저였다. 일이 바쁜 만큼 제멋대로 저를 찾아왔다가 불쑥 떠나버린 범신이 얄밉기는 해도 말이다. 아무래도 단매의 일은 근무가 끝난 다음 개인적으로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중얼거리던 준호는 근무 시간이 끝나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밀린 서간을 밀어두고 책상 위에 뺨을 대었다. 이렇게 지친 몸으로는 집에 가는 것조차 큰일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날 때 다시 확인하는 게 낫다 싶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시간이 되었지?”

 

 

 놀란 듯 동그랗게 뜬 홍채 위로 얼핏 꼭두서니 빛깔을 머금은 햇살이 되튀었다. 햇빛에 얇게 저민 갈색으로 바래어버린 눈을 오래 바라보던 범신은 피식 웃으며 부채로 준호의 갓끈을 살짝 꿰어 끌어당겼다.

 

 

 “핏덩이야, 아까 놀라고도 지금도 또 놀라는 구나. 아까 어딜 좀 가자고 하지 않든?”

 “말씀만 하고 가셨으니 생각도 못했던 것이 당연한 것을요. 아니, 대체 동지사나 되시는 분께서 일은 안 한답니까?”

 “너를 형조의 망나니라 부르는데 나는 어찌 부르겠느냐. 춘추관의 개망나니가 어디 서간이나 들여다보겠느냐? 이쯤 되면 내게는 입도 떼지 않는 법이라.”

 

 

 헛헛하게 웃은 그대로 주르르 끌어가듯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아까 대충 매듭지은 일은 어차피 내일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보려고 생각했지만 복날의 개 마냥 이리 끌려 다니는 것은 영 신통치 않다. 해서, 준호는 볼멘소리를 해보기로 하였다.

 

 

 “아니 저는 뭐 일도 안 한답니까? 제 일, 아직 정리도 못하고 왔습니다만.”

 “서간을 저만치나 밀어두고 말이더냐?”

 

 

 얼핏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상황을 훤히 꿰뚫어보는 말투라 결국 준호는 불평조차 포기하고 제 갓끈에서 범신의 부채를 걷어낸 다음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리도 기어코 저를 데려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처음 만났던 동백 호수 이후로 호기심이 일기도 하는 터였다.

 

 

 “...? 아시는 분 댁이십니까?”

 “조용하거라.”

 

 

 항시 웃음을 잃지 않는 느긋한 표정이라 여겼는데, 하고 많은 집 중 한 채에 들어가는데 이리 긴장하는 것은 또 의외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느른한 눈을 하고 있지만 그 눈 깊은 안 쪽에서는 성마른 긴장이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곧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온 것은 단정하게 수염을 정리한 장년의 남성이었다. 남자는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여 문 안으로 들인 다음 느리지 않은 동작으로 문을 닫고 범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다른 형제님도 함께 오셨군요.”

 “제 오랜 친구의 조카놈입니다. 인사하거라. 주 선비님이시다.”

===

망할.... vpn 돌려야 겨우 되네요

준호 범신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12살로 돌립니다....

그래도 범죄인가 싶긴 하지만 뭐 뇌내 망상이니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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